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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와 유방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08.10.23 | 최종수정일 2013.12.2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사기열전중 항우와 유방에 대해서 읽고 간단한 소감을 적은 글입니다.

목차

1.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의 대결
2. 항우와 유방의 성장과 활동
♤♠맺음말 및 평가♠♤

본문내용

1.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의 대결

중국의 역사에서 초나라 왕 항우와 한나라 왕 유방의 싸움은 유명하다. 이 두 사람은 4년여에 걸쳐 중국 대륙을 놓고 싸움을 하였다.
항우가 제나라를 치기 위해 팽성을 비운 틈을 타서 유방은 56만의 병사를 거느리고 팽성을 어려움 없이 점령해 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항우는 분노하여 정예병 3만을 거느리고 팽성으로 돌진하였다. 유방의 군대는 항우가 동쪽에서 공격해 올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항우는 허를 찔러 새벽에 서쪽 소현을 무찌르고 유방을 급습하였다. 유방은 크게 패하였다. 항우의 포위 공격에 유방은 꼼짝없이 죽어야 하는 급박한 순간에 직면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서북쪽에서 폭풍이 불어 모래바람이 하늘을 덮었다.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한 것이 마치 밤과 같았다. 항우가 거느린 초군은 갑작스런 날씨변화에 어지럽게 흩어졌다. 이 틈을 타서 유방은 포위망을 뚫고 도망칠 수 있었다.
유방이 팽성에서 패하자 그를 따르던 제후들은 하나 둘씩 유방을 배반하고 항우 쪽으로 갔다. 초조해진 한왕 유방은 장량과 앞으로의 대책을 논의했다. 유방은 급할 때도 늘 침착하게 신하들과 상의하였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였다. 장량은 유방에게 장군 한신을 추천하였고 명을 받은 한신은 다시 군대를 수습해 형양에 집결하였다. 그리고 여기저기 흩어졌던 다른 장수들도 형양에 다시 모이면서 서서히 한군의 세력은 회복되기 시작했다.
항우는 유방의 형양성을 공격하였으나 한신은 초군을 크게 무찔렀다. 그러나 포위되어 있는 형양성에는 식량이 부족하였다. 유방에게 장량이 있었다면 항우에게는 범증이라는 신하가 있었다. 범증은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더욱 유방을 압박하도록 지시하였다. 유방의 신하 중에 진평이 있었다. 그는 항우와 범증의 사이를 이간시키자는 계략을 내놓았다. 항우로 하여금 범증을 의심하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어느날 항우의 사자가 형량성에 왔을 때 진평은 초호화판으로 차린 음식상을 가지고 나왔다. 그는 초나라의 사신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참고 자료

사마천, 『사기』, 사사연,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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