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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설명이 있는 한국사 연표 Ⅱ•••중세편(고려, 918~1392)

저작시기 2008.10 |등록일 2008.10.16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0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그림과 설명이 있는 한국사 연표 Ⅱ•••중세편(고려, 918~1392)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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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주요 사건 내용
1. [왕건] 뛰어난 정치력과 덕망으로 고려왕조 창건과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이루었다. 후삼국시대에 아버지를 따라 궁예의 휘하에 들어간 왕건은 903년 수군을 거느리고 전라도지방으로 진출하여 금성(지금의 나주) 등 10여 군현을 빼앗아 궁예의 영토를 확장하고, 시중)이 되었다. 궁예가 세력이 강대해짐에 따라 난폭한 행동을 자행하여 민심을 잃자 918년 6월 홍유·배현경·신숭겸·복지겸 등과 함께 정변을 일으켜 궁예를 몰아내고 국호를 고려(高麗), 연호를 천수(天授)라고 했다. 이듬해에는 개성으로 도읍을 옮기고 관제를 개혁하여 국가의 토대를 닦았다. 지방 각처의 호족들을 극진히 회유하여 포섭했다. 즉위 직후 각 지방의 유력한 호족 및 호족출신 관료의 딸들과 혼인하고, 유력자에게 왕씨(王氏) 성을 하사했으며 그밖에 기인제도·사심관제도 등 여러 정책을 시행했다. 한편 고려 왕실의 독자적인 세력기반을 위해 서경(지금의 평양)의 경영에도 힘을 기울였고, 민심수습을 위해 궁예 때의 가혹한 수취를 비판하면서 `취민유도`를 표방했다. 또한 평민으로 몸을 팔아 남의 종이 된 자 1,000여 명을 찾아내 몸값을 갚아주었으며, 백성에게 3년 동안의 조세와 부역을 면제하였다. 태조는 신라와는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 후백제와는 무력으로 맞섰다. 930년 고창(지금의 안동)싸움에서 큰 승리를 거두면서 주도권을 장악했다. 그뒤 935년에 투항해온 경순왕을 맞아 평화적으로 신라를 병합했으며, 936년에는 후백제를 멸망시켜 마침내 후삼국을 통일했다. 통일 직후 태조는 직접 〈정계〉 1권과 〈계백료서〉 8편을 저술하여 반포했다. 이것들은 새 통일왕조의 정치도의와 신하들이 준수해야 될 절의를 훈계하는 내용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고려가 고구려의 계승자임을 자처하며 북방을 개척하여 만년에는 서북으로 청천강 하류 안주(安州) 지방에서 동북으로 영흥(永興)지방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또한 거란에 의해 멸망한 발해의 유민들이 망명해오자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하여 민족융합의 전기를 마련했으며 거란과는 국교를 단절했다. 943년 죽기 얼마 전에 박술희에게 훈요10조를 남기면서 후세 왕들이 대대로 귀감으로 삼도록 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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