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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침략과 중국 사회의 변화

저작시기 2008.10 |등록일 2008.10.09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중일전쟁의 발발 이후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의 항전형태와 대후방과 변구의 사회적 변화, 그리고 공산당에 의한 국가통합 과정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장기지속의 총력전
Ⅲ 국민당의 항전과 사회적 변화
Ⅳ 공산당의 항전과 사회적 변화
Ⅴ 내전과 공산당에 의한 국가 통합
Ⅵ 맺음말
※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머리말
1931년 9월 만주사변(滿洲事變)을 일으켜 이미 대륙 침략의 발판을 마련한 일본은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야욕을 위해 금주(錦州)․열하성(熱河省)을 침공한데 이어 화북에까지 세력을 확장해 나가다가 마침내 1937년 전면적으로 중국 관내로 쳐들어갔다. 이후 일본의 군사침략확대는 중국국내의 국공간의 내전을 잠시 적이나마 완화시키고 한편에서는 국민정부 하에 독립과 통일을 기치로 하는 내셔널리즘을 고양시켜 제2차 국공합작을 중심으로 하는 항일민족통일전선 형성의 직접적 요인이 되었다. 중일전쟁이 태평양 전쟁으로 확대되면서 중국의 항일민족 통일전선은 국제적인 反파시즘 투쟁의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는 것이 되어 중국 운명은 바로 세계 자유와 민주진영의 운명과 하나가 되었다. 항일전쟁 중 중국에서의 두 주류 중국국민당과 중국공산당은 각각 독자적 성격과 역량을 형성하고 있었으나 모두 국제정치의 조류를 이용하면서도 매우 민족주의적 성격이 농후한 독자성을 강조하여 왔던 것이 후에 양당의 운명을 가르게 된다.
여기에서는 항일전쟁 중 국민당과 공산당의 항전 형태와 국민당의 항일 근거지인 대후방과 공산당의 근거지인 변구(邊區)의 사회적 변화에 대하여 알아보고 공산당에 의한 국가 통합이 어떻게 이루어져 갔는지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한다.

Ⅱ 장기지속의 총력전
당시 일본과 중국은 상당한 국력 차이가 있었다. 일본은 징병제에 의한 국민개병 시스템의 확립으로 상당히 짧은 시간에 1백만이 넘는 병사를 중국 대륙으로 동원하였다. 한편 중국은 모병제를 근간으로 전쟁이 시작될 무렵 전국에서 200만여 명의 육군이 있었으나 실제 동원 가능한 병력은 80여만 명에 불과했다. 장비에 있어서도 중국 최정예 부대가 갖추고 있는 화기는 일본의 절반 이하의 수준이었다. 군함은 중국 6만톤, 일본 200만톤이었고, 비행기는 중국 305대, 일본 2,700대였다.

참고 자료

* 박선영, 《새롭게 쓴 중국현대사》, 소나무, 2001
* 존 킹 페어뱅크․멀 골드만, 김형종․신성곤 옮김, 《신중국사》, 까치, 2007
* 서울대학교동양사학연구실 편, 《강좌중국사 Ⅶ》, 지식산업사, 2006
* 히메이다 미쓰요시 외, 김순호 옮김, 《20세기 중국사》, 돌베게, 1995
* 희전광의, 아부치평 외, 편집부 옮김, 《중국근현대사》, 일월서각,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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