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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분쟁과 종교에 대한 이해

저작시기 2006.06 |등록일 2008.09.3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민족분쟁과 종교에 대해 서술한 것입니다.

목차

서론

본론
1. 십자군 전쟁
2. 이란 - 이라크 전
3. 체첸분쟁

결론

참고자료

본문내용

1. 십자군 전쟁
십자군 전쟁은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 사이에 서유럽의 그리스도교도들이 성지 팔레스티나와 성도 예루살렘을 이슬람교도들로부터 탈환하기 위해 전후 8회에 걸쳐 감행한 대원정이였다.
이슬람 세력인 셀주크 투르크 족이 성지인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크리스트교 순례자를 박해와 이에 위협을 느낀 비잔틴 황제의 로마 교황에게 도움 요청을 계기로 십자군 전쟁은 일어났다. 제1차 (1096~1099)는 예루살렘을 빼앗고 지중해 동쪽 지역에 예루살렘 왕국을 건립했고 제2차 (1147~1149)는 셀주크 투르크의 공격을 받은 예루살렘 왕국 구원을 실패했다. 제3차 (1189~1192)는 내분으로 실패하고 제4차 (1202~1204)는 베네치아 상인의 요구로 예루살렘이 아니라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여 라틴 제국 수립하고 제5차 (1219~1221)는 이집트의 다미에타를 점령했으나 내분으로 다시 빼앗겨 실패하였다. 제6차 (1248~1254) 이집트 공격 실패하고 제7차 (1270) 튀니지공격 실패 하였다. 200년간 7차례의 원정 동안 결국 십자군 전쟁은 1차 원정 때 예루살렘을 회복한 것 이외에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십자군 전쟁은 성지 회복이라는 원래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였으나, 유럽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십자군 전쟁의 실패로 유럽 인의 신앙열이 식어져 교회와 교황의 권위가 크게 떨어졌으며, 봉건 영주와 기사들은 전투의 직접적인 피해로 인해 세력이 약화되었다. 반면에 국민 의식의 성장과 더불어 왕권은 한층 강화되었다. 또 서유럽은 비잔틴 세계와 이슬람 세계와의 접촉으로 새로운 사상과 지식을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동방 무역이 활성화되어 도시와 상공업, 금융업과 화폐 경제가 더욱 발달함으로써 자급 자족적인 장원 경제가 무너지고 유럽 봉건 사회의 붕괴가 촉진되었다.

그렇다면 십자군 전쟁은 과연 종교로 인한 전쟁인가? 나는 십자군 전쟁을 조사하면서 이런 질문을 항상 품고 있었다. 물론 사람마다 보는 시각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내 판단은 십자군 전쟁은 종교적 요소가 어느 정도 포함된 것은 사실이지만 종교로 인한 전쟁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십자군 전쟁의 표면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충돌이라는 종교적 의미가 있지만 그 속을 내려다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참고 자료

3일만에 읽는 세계의 종교 - 야마오리 데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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