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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4~6장)

저작시기 2008.03 |등록일 2008.09.26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정리 요약본

목차

제4장 열정, 1945~48년
한국의 분단
수백명의 보수주의자들: 초기의 협력
남한의 좌익과 우익
대한민국의 건국
제주반란과 여수반란
북한
결론

제5장 충돌, 1948~53년
북한과 중국
1949년 38도 선상의 전투
옹진사건
중국의 참전
워싱턴의 경악
결론

제 6장 한국의 일출: 산업화, 1953년~현재

본문내용

제4장 열정, 1945~48년
한국에서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민족분단과 남북대립이 형성된 시련의 시기는 1943~53년 사이였다. 두 개의 한국, 파멸적인 전쟁, 그리고 동북아시아에서의 국제정치 재편은 여기서 생성되었다.
한국 분단에는 어떤 역사적인 정당성도 없었다. 우리가 냉전에서 연상하는 모든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분단들이야말로 한국분단의 이유였다.
한국의 분단
미국은 전쟁동안 한국에 대한 강대국 간의 협의에서 주도권을 장악했으며, 전후 한국에 대한 다수국가의 신탁통치를 1943년 3월에 영국에, 같은 해 말에는 소련에 각각 제안했다. 프랭클린 로우즈벨트 대통령은 적국 보유의 식민지 처리에 고심했으며 식민지의 독립 요구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한국과 같은) 식민지로 하여금 자치와 독립을 준비토록 하는 점진적인 신탁통치 정책을 추진했다. 그는 소련을 다국적 통치에 참여시킴으로써 일방적인 해결책들을 사전에 차단하는 한편 한국에서의 미국의 이익을 보장하는 조항을 마련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의 독립은 단지 적절한 시기에, 또는 “적절한 절차를 밟아” 이루어지리라는 것이었다. 로우즈벨트의 일관된 생각은 한국의 공동 관리에 러시아인들을 참여시키는 것이었고, 그들의 접경국인 한국에서 그들과 그들의 이익을 포용하며, 그럼으로써 러시아인들의 야심을 봉쇄하는 한편 반대급부를 주려는 것이었다. 분할은 외교를 포기하고 단지 땅에 선을 긋는 훨씬 더 조잡한 방안이었다.
수백명의 보수주의자들: 초기의 협력
서울에 진주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미국인들은 한국인을 한 명도 만나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한국의 어떤 정치지도자들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다고 단정했다. 제 24군단의 정보책임자인 쎄실 니스트의 보고서에서 이 놀랄 만큼 빠른 선택을 추적할 수 있다. 니스트의 판단은 하지 장군의 국무부 정치고문인 메럴 베닝호프가 9월 15일 워싱턴에 보낸 보고서에 구체화 되어 있었다.
남한은 불꽃만 튀어도 폭발할 화약통과 같다고 묘사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입니다. 일본인들 밑에서 높은 지위에 오른 [한국인들은] 친일분자로 여겨지고 있으며, 그들의 주인들만큼이나 증오의 대상이 됩니다.……
서울의 정치적 상황에서 가장 고무적인 단 하나의 요소는 나이가 많고 교육을 잘 받은 한국인들 가운데 수백 명의 보수주의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들 중 다수가 일본에 봉사했던 사람들이긴 하지만 그런 낙인은 결국에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남한의 좌익과 우익

참고 자료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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