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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학살사건

저작시기 2008.04 |등록일 2008.09.23 | 최종수정일 2016.09.02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3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거창 학살 사건에 관한 자기생각

목차

없음

본문내용

빛나는 역사만이 진정한 역사가 아니라, 가려진 역사 또한 빛나는 역사 못지않게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한 책에서 주체적 역사인식이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거나 빛나는 역사적 유산을 강조하는데서만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실패한 역사의 책임을 무엇보다도 민족 스스로가 지려는 자세를 지닐 때 더 강하게 세워질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강만길, 「고쳐 쓴 한국현대사」, P 201 창작과 비평, 1994

이런 측면에서 민족 대학살은 1950년대 전쟁에 가려 알려지지 않는 그늘진 역사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자행된 수많은 민족 대학살 중에서 거창학살사건에 대해 살펴보았다. 거창학살사건은 1950년 10월 이후 지리산 지구 공비토벌 과정에서 전개된 일종의 적성지구 초토화 작전 수행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1951년 육군의 `견벽청야` 작전에 따라 거창군 신원면 지역 양민 700여명을 모두 모아 마을 뒤 산골짜기에서 학살한 사건이다.
민족 대학살 사건에 대해 토론을 하며 당시 정부 및 육군 측의 대처에 대한 일말의 동저도 생기지 않는 것을 무엇일까? 이런 종류의 토론에는 분명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라는 그들만의 논리와 명분이 우리들로 하여금 그러한 행위들을 이해하고 나아가 인정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현실과 이상은 다른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이번 거창학살사건의 경우 문제의 소지가 있는 지역의 초토화라는 명분의 이른바 ‘견벽청야’ 작전은 어떤 이유든지 인정 할 수 없는 것이고,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이다. 거창군 신원면 지역의 주민들을 좌․우의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이념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수였을 것이다. 그러한 그들에게 단지 공비와 내통했다는 어이없는 이유 아래 학살한 행동은 분명 잘못 된 것이라는 생각이다.
우리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역사에 대해서는 교과서, 영상자료와 같은 매체를 통해 배우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분단에 대한 인식이 예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언급이 자유로웠지만, 그 이전에는 그러한 언급조차 쉽게 할 수 없었고, 민족학살은 더욱 더 그늘 속에 가려져, 아무런 대책과 해결 없이 당사자들의 가슴 한 구석에 한으로만 인식되어 왔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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