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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합병인수사례분석 - J.P.모건 성장사

저작시기 2008.09 |등록일 2008.09.22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0페이지 | 가격 3,000원

소개글

J.P.모건 성장사

목차

미국 역사상 최대의 문어발 재벌

미국 최초의 군산복합체

에디슨의 주인, J.P.모건

1907년 공황때 혼자서 중앙은행 구실을 해낸 사나이

1907년 금융공황은 사람들로 하여금 중앙은행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떼돈 번 전쟁상인

대공황은 더 큰 공룡을 낳았다

공황을 거치며 미국 양대 재벌로 성장

국제결제은행의 창시자

IMF때 여러 국내 금융기관들을 문 닫게 만든 J.P.모건

본문내용

국제결제은행의 창시자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은 세계대공황의 필연적인 귀착점이었다. 세계대공황은 전 세계의 수요를 일시에 몰살시켰다. 세계경제가 공황에서 완전히 탈출하려면 세계적인 규모의 새로운 수요 창출이 필요했다. 미국 또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비록 루즈벨트 대통령이 테네시 개발 계획 등 뉴딜 정책을 통해 인위적인 수요를 창출함으로써 위기의 강도를 약화시키는 데 성공하기는 했으나, 이는 미봉책에 불과했다.

세계가 이처럼 대규모 신규수요 창출을 갈망하던 시점에 독일의 유럽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앞서 제1차 세계대전 때 엄청난 재미를 보았던 J.P. 모건 등이 내심 쾌재를 불렀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습격으로 미국이 본격적으로 참전하게 되면서 J.P. 모건은 또다시 전시공채 판매 등을 통해 부를 증폭시킬 수 있었다.

미국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쏟아 부은 전비는 모두 2천4백50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는 전쟁 전 미국 정부의 50년 예산과 맞먹는 액수였다. 전비는 대부분 전시공채 판매를 통해 조달되었는데, 미국이 발행한 전시공채의 절반 이상을 J.P. 모건이 판매하면서 그 대가로 엄청나 액수의 수수료를 챙겼다.

그런데 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 J.P. 모건은 심각한 내부위기에 직면했다. 그해 3월12일 잭 모건이 숨을 거둔 것이다.

그의 뒤를 이어 모건 3세인 주니어스 스펜서 모건이 등장했다. 주니어스는 이미 모건그룹의 자회사인 제너럴 모터스와 U.S 스틸의 이사를 거치면서 후계자 수업을 단단히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후 국제금융계에서 모건이라는 사람의 고유 명사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외형상으로는 주니어스의 역량이 조부나 부친보다 떨어져 모건 일가의 시대가 끝난 것으로 비쳤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번거로운 노출을 피해 좀 더 깊숙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을 뿐, 그 영향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국제금융계의 전언이다. 이 같은 안전장치는 이미 1930년 대공황 때 잭 모건에 의해 마련되었다.

그해 5월에 미국·영국·프랑스·이탈이아·독일·벨기에 등 6개국이 참여한 가운데 스위스 바젤에서 BIS(국제결제은행)가 설립되었다. 이 기구의 목적은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독일에게서 전쟁배상금을 받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맨 처음 BIS 설립 구상을 내놓고 이를 조직한 막후세력이 다름아닌 잭 모건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자유채권 판매를 대행해 영국. 프랑스의 전비 조달 업무를 맡았던 잭 모건은 미국 대통령이던 후버와 함께 미국측 협상대표로 직접 독일배상회의에 참석, 독일이 배상금으로 지불해야 할 2천2백60억 달러를 1천억 마르크로 대폭 삭감하고 지불시한도 59년 동안으로 늘려주는 등 전쟁 뒷마무리 협상을 깔끔히 매듭짓는 수완을 발휘했다. 독일은 잭 모건의 배려를 매우 고마워했다.

참고 자료

프레시안 인터넷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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