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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암리 민속마을을 다녀와서

저작시기 2007.05 |등록일 2008.09.08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3페이지 | 가격 300원

소개글

충남 아산에 있는 외암리 민속마을을 다녀와서 쓴 감상문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외암리는 15세기경 강씨, 목씨가 정착한 후에 마을 이 형성되었다.
그후 조선시대 중엽 명종(1534-1567)때에 장사랑 벼슬을 지낸 이정 일가가 낙향하여 마을로 정착되었다. 예안 이씨 세거지로 된 것은 이때부터이다. 그러니 400년의 내력을 자랑하고 있을만하다. 이정의 6세손인 이간이 호를 외암이라 지은 뒤에 그를 따서 마을 이름을 외암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뒤에 한자만 바뀌어졌다. 마을은 설화산에 기대어 배산으로 삼고 마을 앞으로는 작은 내가 흘러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세에 자리잡고 있다.

13:00시가 다되서야 외암리 마을에 도착하게 되었다.
입구에서 바라본 외암리마을의 경치는 가관이었다. 가을의 산과 어루러진 초가집과 기와집들이 마을앞의 논과 어우러져 있었다.
외암리마을의 특징은 돌담길이었다. 마을 대부분의 벽이 돌담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집집이 쌓은 담장 길이를 모두 합하면 6,000m나 된다고 한다.
소박하게 쌓여 있는 모습으로 돌담을 바라보면 왠지 모르게 우리 조상들의 훈훈한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돌담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600년된 느티나무가 있다. 마을에서는 이곳에서 느티나무제라는 제사를 지낸다고 하였다.

마을앞에 큰 냇가가 있었지만 마을 중간에도 보면 수로가 있었다. 이수로는 방화용,정원수로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었다 한다.
처음에 보이는 수로를 따라가다 보면 영암댁을 볼수있다. 영암댁의 집터는 기가 쎄서 12지신석으로 기를 누르고 있다고 했다. 정말 문을 들어서자마자 기이한 모습을 한 돌들이 많이 있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있는 사랑채와 또 하나의 문을 열고 들어가야하는 안채가 있었다. 안채 안에는 자세히 볼수없어서 아쉬웠지만 거기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었던거 같다. 안채뒤에는 보지못했지만 그 뒤쪽에는 이순신장군을 모시는 가묘가 있다고 한다. 사랑채와 안채를 연결하는 쪽문은 두 곳을 연결해주는 이동통로의 의미도 있었지만 안채에서 쪽문을 열고 정원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도 있다고 한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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