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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메르 회화에서 나타나는 동방코드

저작시기 2008.06 |등록일 2008.09.08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0페이지 | 가격 1,800원

소개글

오리엔탈리즘과 베르메르 회화에 대한 고찰입니다.

목차

Ⅰ.머리말
Ⅱ.17세기 네덜란드
Ⅲ.얀 베르메르
Ⅳ.베르메르의 회화와 동방코드-
「진주 귀고리 소녀」를 중심으로
Ⅴ.동방코드에 대한 견해
Ⅵ.맺음말

본문내용

17세기 네덜란드의 문화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위한 항전과 칼뱅주의가 빚어낸 정치적, 종교적 역사의 배경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우선 정치적으로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의 지배하에 있던 네덜란드에 프로테스탄트 운동의 일환인 칼뱅주의가 유입됨으로써, 내분의 도화선을 지폈다. 표면적인 종교 갈등은 기본적으로 스페인에 대한 네덜란드의 항전의 의미와 함께, 사회적으로는 귀족과 시민 계급의 내분으로 나타났는데 결과적으로 네덜란드는 정치적으로 독립적이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민계급 중심의 역사상 유래 없던 번영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17세기는 네덜란드에 있어서 전성기이자 번영기였다. 이러한 17세기의 네덜란드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종교개혁, 동인도회사, 시민사회라는 몇 가지 키워드를 이해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도 이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17세기 네덜란드의 모습을 살펴보고자한다.
16세기 초 네덜란드는 스페인과 독일의 왕위를 겸하던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당시 스페인은 가톨릭을 믿고 있었고, 네덜란드에는 칼뱅주의자들이 모여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생긴 경제적 빈곤과 정치적 불안들은 네덜란드 민중을 자극하였고, 민중들은 마침내 스페인을 항해 항전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네덜란드 역사상 가장 긴 저항으로 꼽히는 80년 전쟁(1588-1648)의 시작이었다. 결국 전쟁에서 승리한 네덜란드는 독립을 성취하게 되고 왕조의 지배 없는 이른바 시민국가를 건설하게 된다. 즉, 정치적으로 네덜란드는 유럽의 그 어느 나라보다 자유로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귀족이나 왕이 없는 네덜란드 사회를 다스린 것은 총독이었다. 특히 네덜란드의 독립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오라네가문은 대대로 총독을 배출하였는데 이 총독조차도 시민의 대표가 모인 주 의회에서 임명하는 지위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네덜란드의 실질적인 주인은 시민이었고, 네덜란드의 문화는 시민들의 경제적 풍요 속에서 발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17세기 네덜란드 부유의 원인은 15세기말에서 16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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