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중세 국어 시기 /ㅿ/과 /ㅸ/의 인정 여부

저작시기 2008.07 |등록일 2008.09.06 | 최종수정일 2014.04.29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국어사 강의에 과제로 냈던 전기 중세 국어 시기 /ㅿ/(반치음)과 /ㅸ/(순경음 비읍)의
인정 여부에 관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ㅿ/과 /ㅸ/의 인정 여부
2.1. /ㅿ/
2.1.1. 중세 전기 국어에서 /ㅿ/의 존재를 인정하는 경우
2.1.2. 중세 전기 국어에서 /ㅿ/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

2.2. /ㅸ/
2.2.1. 중세 전기 국어에서 /ㅸ/의 존재를 인정하는 경우
2.2.2. 중세 전기 국어에서 /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

3. 마치며

본문내용

1. 들어가며
중세 후기 자음 체계가 이전의 자음 체계와 갖는 구별되는 특징 중의 하나는 /ㅿ/과 /ㅸ/이 한 계열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ㅿ/은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에 걸쳐 소멸이 진행되어 16세기 말에 자취를 감추었으며, /ㅸ/의 경우 『月印釋譜(1459)』까지 존재하였으나 『楞嚴經諺解(1462)』소멸하였다. 때문에 다른 자음들과는 달리 일찍 소멸해 버린 /ㅿ/과 /ㅸ/에 관한 학자들 간의 견해가 대립되고 있다. 이기문, 김무림 등의 학자들은 /ㅿ/과 /ㅸ/이 중세 전기에도 존재해있던 하나의 음소로 볼 것을 주장하는 데 반해, 김종훈과 김동소 등은 표기상의 흔적이 없음을 들어 하나의 음소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ㅿ/과 /ㅸ/을 중세 후기 이전에도 존재했던 독립된 음소로서 인정할 수 있는지에 관한 대립되는 견해를 제시하고, 이를 토대로 중세 전기 국어시기에 /ㅿ/과 /ㅸ/의 인정 여부에 대한 의견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2. /ㅿ/과 /ㅸ/의 인정 여부

2.1. /ㅿ/
‘ㅿ’은《훈민정음》에서 不淸不濁의 半齒音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중국어 성모 체계의 日母에 해당한다. 일모는 중국어 中古音에서 ńź였으며, 그 뒤 ń의 탈락으로 北方音에서는 ź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어의 성모 체계를 바탕으로 훈민정음 체계가 만들어진 것과 위의 여러 예들로 보아 ‘ㅿ’은 유성치조마찰음 [z] 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학계에서는 이 음을 후기 중세 국어의 독립된 音素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 보편적 견해이지만, 이것이 전기 중세 국어에서도 존재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2.1.1. 중세 전기 국어에서 /ㅿ/의 존재를 인정하는 경우
중세 전기 /ㅿ/의 존재를 인정하는 주장은 이기문과 김무림에 의해 전개된다. 이기문과 김무림 모두 『鄕藥救急方』과 『鷄林類事』의 기록을 토대로 하 견해를 뒷받침하고 있다.
우선 이기문은 『鷄林類事』에서 “弟曰 了兒”(아), “四十曰 麻刃”(마)의 두 예를 들어 ‘兒’, ‘刃’의 初聲이 후기 중세어의 /ㅿ/에 대응되는데, 훈민정음의 初聲 체계에서 /ㅿ/은 日母에 해당되며 ‘兒’, ‘刃’은 바로 日母字들이니 이 대응관계는 『鷄林類事』 시기에 /ㅿ/이 존재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참고 자료

강길운(1993),『국어사 정설』, 형설출판사
김동소(1998),『한국어 변천사』, 형설출판사
(2003),『중세 한국어 개설』, 한국문화사
김무림(2004),『국어의 역사』, 한국문화사
김종훈 외(1998), 『한국어의 역사』, 대한교과서주식회사
이기문(1998),『국어사 개설』, 태학사
서정범(1982), 「모음조화의 실상」,『慶熙語文學』Vol.5 No.1
: 慶熙大學校 文理科大學 國語國文學會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