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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과 낙랑 문제

저작시기 2004.11 |등록일 2008.04.06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지난 2004년 2학기에 사학 교양과목 과제물로 제출한 파일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의 근원이 될 수 있는 신석기 시대 이후부터 고조선 및 낙랑의 위치
등을 다룬 과제물입니다. 역사 관련 교양과목이나 기초과목을 수강하실 때 고조선
및 낙랑에 대한 과제물을 수행하실 때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목차

1.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
(1) 신석기 시대
(2) 청동기 시대
(3) 신석기 문화와 청동기 문화 전래상의 특징
2. 고조선 강역의 쟁점 및 낙랑에 대한 고찰
(1) 대동강 중심설
(2) 요동 중심설
(3) 낙랑에 대한 고찰
3. 결론

본문내용

고조선의 강역의 문제는 일반적으로 고조선의 중심을 대동강유역으로 볼 것인지 또는 요동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고 볼 수 있는 데, 이러한 양상은 역사지리적 문제를 떠나 객관적이고 실증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동강설을 주장하면 일제의 식민사학의 영향을 받은 듯 인식되었고, 요동 중심설을 주장하게 되는 경우는 국수주의에 빠진 것처럼 오해되는 경우도 있어 왔다. 그러면 요동 중심설과 대동강 중심설 등의 학설이 어떻게 하여 제시되게 되었나 알아보도록 하겠다.
『관자』를 비롯한 『전국책』․『산해경』등 선진시대의 문헌에 이미 조선의 위치에 관한 단편적인 기록들이 보이며, 한대 이후의 문헌인 『史記』․『한서』․『위략』 등에 오면 조선에 관한 보다 구체적인 사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따라서 조선의 위치를 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원사료에 대한 객관적 이해가 필요하다. 선진문헌에 보이는 조선의 위치는 모호하여 정확한 위치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대 이후의 문헌인 史記, 한서, 위략 등에 이르면 선진 문헌의 모호한 표현과는 달리 조선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중에서도 고조선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위만조선 당시의 기록으로 사료적 가치에서 다른 사서와 비교될 수 없는 『史記』조선전의 기사가 우선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史記』의 고조선의 위치와 관련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조선왕 만은 옛날 연나라 사람이다. 연나라의 전성기에 처음으로 진번․조선을 침략하여 복속시키고 요새를 쌓았다. 진이 연을 멸한 뒤에는 요동의 외곽에 소속시켰는데, 한이 건국하여서는 그곳(요동외요의 관할 지역)이 멀어 지키기 어려우므로 다시 요동의 고새(옛요새)를 수리하고 패수에 이르는 곳을 경계로 삼아 연(한나라 후국)에 부속시켰다. 연왕이 흉노로 도망갈 때에 만도 망명하였는 데 1천명의 무리를 모아 상투머리에 만이의 옷을 입고 동쪽으로 도망하여 국경의 초소를 빠져나와 패수를 건너 진국의 옛 공지에 거주하면서 겨우 변방의 수비를 맡아 진번과 조선에 속해 있었으나 만이(그 지역 토착민)와 옛 연․제의 망명자들이 그를 왕으로 삼으니 왕검(성)에 도읍하였다. ……진번․임둔이 모두 와서 복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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