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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정벌

저작시기 2007.12 |등록일 2008.04.05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대마도정벌과 그 의의

목차

I. 서론
II. 본론
1. 대마도 정벌의 뜻
2. 대마도 정벌의 배경
3. 대마도 정벌의 준비 및 전개과정
(1) 대마도 정벌을 위한 준비
1) 대외적인 준비
2) 대내적인 준비
3) 대마도 정벌의 뒷받침
(2) 대마도 정벌의 전개과정
1) 첫 번째의 대마도 정벌(제1차)
2) 두 번째의 대마도 정벌(제2차)
3) 세 번째의 대마도 정벌(제3차)=기해동정
III. 결론

본문내용

I. 서론
대마도는 원래 우리 땅으로 옛날 신라와 가야의 백성들이 대마도에 살았다는 증거도 있고 고려 때만 하더라도 대마도는 우리 땅이었다. 그런데 13~16세기 한반도와 중국연안에서 활동한 일본인의 해적집단 즉, 왜구가 주로 대마도를 근거지로 삼아 활동하였다. 대마도는 인구가 적고 농토가 척박하여 농사에 적합하지 않아 기근을 면하기 어려운 곳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왜구가 대마도를 근거지로 삼아 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왜구에 의해 식량이 약탈되었다. 그래서 대마도를 지키기 위해 대마도를 정벌하게 되었다. 대마도 정벌을 간단히 말하자면 대마도에 있는 왜구를 근절시키기 위하여 고려말과 조선초에 세차례에 걸쳐 대마도를 정벌한 일이다. 본문에서는 대마도 정벌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II. 본론
1. 대마도 정벌의 뜻
대마도 정벌은 좁은 뜻에서는 좁은 뜻에서는 1419년(세종 1) 6월에 이종무를 삼군도체찰사로 임명하여 정벌한 일을 말하나, 넓은 뜻으로는 이보다 앞서 있었던 고려 창왕 때와 조선 태조 때의 정벌까지도 포함한다.
2. 대마도 정벌의 배경
고려가 망한 이유 중의 하나가 왜구 때문에 조운길이 막혀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새로 건국된 조선은 오구의 발호를 막는 것이 매우 급한 문제였다. 왜구란 일본의 해적떼로, 처음에는 20~30척이 떼를 지어 중국이나 우리 나라 해안에 나타나 노략질했다. 나중에는 200~300척의 많은 해적떼가 쳐들어온 적도 있다.
배 한 척에 20명 정도가 탔으므로 300척이면 6000명의 해적떼가 쳐들어 온 것이다. 이 정도면 왜구가 아니라 대군이 침공한 것이며, 그 횟수로 1년에 58회 쳐들어온 경우도 있다. 1년이 52주이니 매주 쳐들어 왔고, 어떤 주에는 2회나 침입한 셈인 것이다.
이들이 떼를 지어 다니며 노략질하여 연안의 마을은 텅텅 빌 지경이었다. 조선은 건국한 후 이들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등 회유책을 써서 달랬지만 효과가 없었고 이들의 발호는 날로 심해졌으므로 결국 조정에서는 이들의 소굴인 대마도를 토벌하기로 했다.
정리하자면 대마도 정벌의 배경은 고려때나 조선때나 왜구의 침탈을 막기 위해 대마도를 정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참고 자료

1. <조선역사 바로잡기> 이상태 저
2.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박영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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