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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원 요시노가리유적

저작시기 2007.05 |등록일 2008.04.05 한글파일한글 (hwp) | 11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일본의 최대취락 요시노가리유적이 역사공원으로 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봄. 유적공원으로서의 보존과 활용방안 검토

목차

Ⅰ. 요시노가리의 발자취
1. 발굴의 발자취
2. 유적보존과 역사공원에로의 발자취
Ⅱ. 야요이시대와 야마타이코꾸시대의 요시노가리
Ⅲ. 요시노가리 역사공원
1. 목적 및 구분
2. 계획의 내용
3. 사업 진척 상황

본문내용

남부에 요시노가리유적이 존재하는 「시바야(志波屋) 요시노가리구릉」의 各所에, 戰前, 戰後의 농지개간이나 귤감농장조성 등에 따라, 옹관 등 彌生토기들과 그 밖의 유물들이 출토되어, 1920년대 전반부터 마쯔오테이사쿠(松尾禎作) 시찌다타다시(七田忠志) 미토모쿠니고로우(三友國五郞) 등 사가현과 후쿠오카의 연구자들에 의해 주목되어 학술잡지 등에 게재되었다.
1952년, 구릉북부에 위치하는 히가시세부리손 미쯔나가타(三津永田)유적의 밀감밭조성에 따라, 옹관안에서 미생인골과 함께 中國製銅鏡(連弧文昭明鏡 龍文鏡), 조개팔찌 등이 출토되었고, 다음해에는 태풍에 의해 붕괴된 하천제방의 복구시, 채토지로 채택되어 일본고고학회의 쯔보이교타리(坪井淸足) 카나자키히로시(金關恕) 등에 의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새롭게 중국경(流雲文緣獸帶鏡)과 철제칼 등이 출토되어, 「대륙문화유입의 교통로에 해당하는 현해탄쪽의 지방뿐 아니라, 이 지방에서도 관련된 물건이 받아들여져 있다」는 것이 강하게 인식되었다.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전반, 요시노가리유적 주변에도 포장정비사업과 공장 택지건설에 따라 발굴조사가 실시되게 되었다. 1980년도 간자끼쵸 교육위원회의 조사에서, 현재의 가복원 고상창고군의 서쪽 논부분에서 야요이시대 후기의 고상창고로 생각되는 대형 굴립주건물터 여러 채와, 구릉위에서는 두 줄로 질서있게 매장되어 있던 옹관이 발굴되었다. 1981년과 1982년도의 마타가와쵸 교육위원회의 조사에서, 구릉남서끝의 논지역에서 야요이시대 중기부터 후기에 걸친 굴립주건물터군과 유구 등이 발굴되어, 다량의 탄화미와 절구공이 등의 목제품이 출토되었다.
1982년 6월에는, 요시노가리유적일대가 공업단지 최유력후보지로 선정되어, 동년 7월부터 11월에 걸쳐서 요시노가리유적조사회에 의해 단지예정전지역에 대해서 확인조사가 실시되었다. 그 후 논지역의 확인조사도 행해져, 단지계획지 약 68ha 중 문화재보존녹지 6ha를 제외한 약 30ha에 대한 기록보존을 위해 발굴조사를 행하게 되었다.
1985년과 1986년, 縣敎育委員會의 佐賀東部導水路建設에 따른 조사시 구릉위(현재의 요시노가리유적 전시실 부근)에서 옹관묘군과 후기의 유적 등이 발굴되었다.
이상의 경과를 거쳐, 1986년 5월 하순부터 縣敎育委員會에 위한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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