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신선조 VS 유신지사의 비교 분석 (바람의 검심에 나타난 신선조와 유신지사 비교)

저작시기 2007.10 |등록일 2008.04.03 한글파일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일본 문화나 일본 역사 등 일본에 관련된 주제로 조사해 오는 것이 레포트였습니다.
(강좌 : 중급 일본어)

목차

1. 주제 선택의 이유

2. 新選組(しんせんぐみ)

3. 維新志士(いしんしし)

4. 新選組 VS 維新志士

5. Report를 쓰고 나서

본문내용

....
어떨까하는 제안이 이루어졌다. 결국 분큐 3년(1863) 3월에, 섬길 영주를 잃은 무사의 모집이 개시되었고 여기에 곤도 우용이나 히지카타 도시조 등이 응모한다.‘섬길 영주를 잃은 무사대’라고 이름 붙여진 그들은 교토로 들어간다. 그러나 섬길 영주를 잃은 무사대의 친부모와 같은 키요카와 하치로가 분열하면서, 곤도 등은 교토 수호직에 임하고 있던 아이즈번에 몸을 의지해 교토의 치안 유지를 목적으로 한 조직을 결성한다. 이들은「미부 섬길 영주를 잃은 무사」라고 불리게 된다. 분큐 3년(1863) 8월에 일어난 8.18 정변의 활약에 의해 정식으로 「신선조」의 이름이 주어졌으며 이 때 명실 공히 신선조가 탄생하게 된다. 신선조는 1863년부터 1868년까지 5년간 교토의 치안을 유지하던 조직이었으며, 톱니무늬의 하오리와 마코토(誠)란 글자가 씌어진 깃발을 내세운 막부말기 최강의 검객집단이었다. 신선조의 정치적 성향은 어디까지나 구체제를 신봉하는 우익 좌막파로 교토에서 유신지사들을 집요하게 공격하고 살해하는 등 1868년까지 막부말기의 교토를 누비며 살벌하고 잔인한 활동을 계속하였다.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