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김동인 작가론, 「감자」분석

저작시기 2008.04 |등록일 2008.04.01 한글파일한글 (hwp) | 14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문예창작 국어국문학 전공했어요.
스스로 정리하시기 쉽게 문장으로 길게 썼어요.
이것을 뼈대로 그밖에 자료 참고하시고
서론-본론-결론으로 개성있게 목차 나누시면
좋은 리포트가 나올거에요.
*저도 A+ 받았구요, 다른 자료 그대로 옮기지 마시고
편집잘하셔서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래요.^ㅡ^

목차

Ⅰ. 작가연보
Ⅱ. 생애와 연결된 문학관
Ⅲ. 단편소설과 자연주의의 한계
Ⅳ. 대표작품 분석

본문내용

Ⅱ. 생애와 연결된 문학관

김동인은 1900년 10월 2일에 평양의. 진선동에 사는 거부인 김대윤(金大潤)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고 한다. 15세 때에는 일본에 유학하여 명치학원의 중학부에 입학하고 나중에 청산학원의 중학부로 전학하여 졸업하고 있다. 김동인의 문학 작품에 관해 쓴 여러 사람들의 견해에 의하면 그의 성격은 오만했고 독선적인 사람이고 옷을 잘 입고 멋도 부릴 줄 아는 사치한 댄디즘의 일면도 지녔었다고 한다.

그러나 특기할 것은 오만이나 독선이나 사치성보다는 사재를 들여 문학지 《창조(創造)》를 출간한 점이다. 이러한 측면은 김동인의 문화사업가적인 측면과 창작가적인 요소가 결합괸 것으로 높이 찬양할만한 점이 된다. 그는 1917년에 부친상을 당하고, 같은 해에 혼인을 했으나, 10년 후에는 부인과 헤어진다. 그 사이에 《창조》지를 통하여 많은 단편들을 빨표하고 중요한 작가적 지위를 얻고 어느 정도의 명성도 얻었지만, 개인적인 생활에서는 결코 행복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백철(白鐵)의 <고 김동인 선생의 인간과 예술>(《신천지》8권 2호), 정비석(鄭飛石)의 <김동인의 예술과 생애>(《자유세계》1권5호) 등의 기록에는 아편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보이고있으나, 실제로 어느 정도 심각했는지, 그것을 알 수는 없다. 27세가 되던 1926년에 토지관개사업에 실패한 다음의 심경을, 그는 다음과 같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적고 있다.

관개사업이 실패에 돌아간 뒤의 나의 생활은 순전한 자포적 생활이었다. 어제는 군산, 오늘은 대구, 내일은 신의주, 이와 같이 방향없이 지향없이 헤매었다. 파산! 눈앞에 당도한 이런 무서운 그림자에 위협되어 잠시도 한 곳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아아! 나는 그 때 아편이 얼마나 그리웠으랴.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