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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청제비

저작시기 2007.09 |등록일 2008.04.01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영천청제비란?

목차

머리말
1. 영천 청제비란 무엇인가
1) 청제비의 발견과정 및 건립 배경
2) 청제비의 형태와 특징

본론
2. 영천 청제비의 병진명과 정원명
1) 병진명과 정원명의 의미 (사전적 의미)
2) 병진명 분석
3) 정원명 분석
4) 병진명과 정원명이 나뉘어진 이유 및 차이점
- 나뉘어진 이유
- 외적인 차이 (서체, 시대, 상태)
- 내적인 차이 (통계수치, 목적)
- 종합적인 가치의 평가
5) 청제 중립비
- 건립 과정 및 내용

맺음말
4. 영천 청제비의 현대적 의미
1) 청제비의 고고학적 가치
2) 청제비의 현재 관리상태와 문제점

본문내용

1. 영천 청제비란 무엇인가?

◉ 보물 제517호
◉ 경상북도 영천시 도남동 산7-1

1) 청제비의 발견과정 및 건립 배경

1968년 신라삼산학술조사단에 의해 발견되었다. 영천의 남쪽에 청제(보통 "청못"이라 함)가 있는데 이 못의 북쪽에 비가 있다. 그 글에 "당나라 정원14년(798)에 임금이 양내사(兩內史)를 보내서 인부 14,800여명을 시켜 못을 막고 비를 세워 전말(顚末)을 기록했다"고 말하고 있다. 대개 이 못의 관개(灌漑)는 300여석이라 지금도 이익을 보고있는데 지난 순치(順治) 계사년(1653년)에 어떤 사람이 절단한 바가 되어 흙속에 묻혀, 그 고적(古跡)이 부전(不傳)함을 애석해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제 여기에 고쳐 세워 이같이 기록한다. "아! 후인이 이 비로 말미암아, 이 못을 폐(廢)해서 안되는 까닭을 생각하게 된다면 이 비가 이 못에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강희(康熙) 27년(1688) 9월"삼국 및 통일신라 양시대에 걸쳐 양면비(兩面碑)는 이것이 처음이고 농업수리비(農業水利碑)로서 제자리에 1200여년이 넘도록 서있는 것도 이 비가 처음이다. 이 청제비가 노천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80년에 비각을 세움으로써 보존할 수가 있었다.

2) 청제비의 형태와 특징

이 비는 신라시대(新羅時代) 청못이라는 저수지 수축과 관련 있는 양면비(兩面碑)이다. 비는 화강암의 자연 관석으로 장방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크기는 높이 114 ,폭94 ,두께16 이다. 면에는 행간이나 윤곽선은 없고 양면을 가공하여 글자를 새겼는데 그 양면의 비문(碑文)은 각기 다른 연대와 내용을 담고 있다. 비의 한 면은 병진년(丙辰年) (법흥왕(法興王)23년,536년)의 간지(干支)가 적혀 있는 것으로 청못을 처음 축조한 기념으로 새긴 것이다. 다른 면은 정원(貞元) 14년(원성왕(元聖王)14년,798년)의 절대 연대가 적혀 있는 것으로 청못의 일부 무너진 둑을 다시 수리한 사실이 적혀 있다.

참고 자료

한국문화유산답사회,『팔공산자락』. 돌베개, 1997.
하일식, 청제비 정원명의 力役운영 사례 분석:東方學志』,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1997
이우태,『영천청제비를 통해 본 청제의 축조와 수치:사학논총』, 변태섭박사 화갑기념 논 총 간행위원회, 1985.
매일신문 2004-11-25

인터넷자료 : 문화유산답사회 우리얼
http://www.tourkorea.or.kr
http://blog.empas.com/noshok/14213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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