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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부론-농지개혁 정책

저작시기 2007.11 |등록일 2008.03.30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700원

소개글

한국정부론 리포트
-1공화국의 토지개혁-

목차

1. 서론
(1)1공화국의 농지개혁정책에 대한 재조명
(2)선각자 이승만의 토지개혁에 대한 앞선 사고방식
2.본론
(1)농지개혁법의 정의
(2)농지개혁의 필요성
(3)농지개혁의 과정
(4)농지개혁의 성격
(5)농지개혁법의 장단점
(6)농지개혁법으로 인한 변화
3.결론
(1)농지개혁에 대한 평가
(2)농지개혁의 영향

본문내용

1. 서론
(1)1공화국의 농지개혁정책에 대한 재조명
1948년 3월과 50년 3월 두 차례 실시된 우리나라의 농지개혁은 세계사에서도 성공적인 사례로 뽑힌다. 그러나 70~80년대만 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의 농지개혁은 불철저했지만, 북한의 토지개혁은 철저했다는 주장이 정설처럼 회자됐다. 하지만 한국 경제가 놀라운 속도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함에 따라 그와 같은 성공의 원동력으로서 우리의 농지개혁을 보는 눈도 달라지고 있다.
농지개혁은 우리의 고도 경제성장 비결 중 하나로 새롭게 거론된다. 농지개혁이란 지주-소작 관계 폐지를 말한다. 해방 직후 남한 농민의 70%가 토지를 거의 갖지 못했다. 그런 농민들이 최소한의 농지를 확보했고, 경제적 안정을 기반으로 자식들을 가르칠 수 있었다. 문맹률이 현저히 낮아졌고 양질의 근로자들이 양산되면서 산업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1차 농지개혁은 48년 3월 22일 미군정의 법령 공포와 함께 시작됐다. 신한공사(동양척식회사 후신)가 관리하던 일본인 소유의 농지 등이 대상이었다. 한국인 지주의 농지를 대상으로 한 2차 농지개혁안은 50년 3월 10일 공포됐다.
2차 농지개혁안이 공포되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결국 국가가 지주로부터 농지를 먼저 구입하는 형식을 취했고, 이어 소작 농민이 1년 수확량의 30%를 5년간 국가에 현물 상환하면 소작 농지를 농민의 소유로 전환시켜 주었다.
이렇듯 남한의 농지개혁은 지주와 농민 중 어느 일방에 편향적이지 않았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자본주의 공업 발전을 위한 해법을 농지개혁에서부터 찾은 점도 새롭게 평가되어야 한다. 70~80년대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지주편을 들었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참고 자료

최영묵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농지개혁과 한강의 기적’
김용삼 월간조선 전략기획실장-‘이승만의 경제리더십’
한영우 「다시 찾는 우리 역사」
정재준 「통합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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