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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관파천과 경복궁

저작시기 2007.11 |등록일 2008.03.30 한글파일한글 (hwp) | 14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아관파천에 관해서 경복궁과 그 근처 러시아 공사관을 직접 답사해서 사진과 함께 조사한 답사기입니다.
직접 찍은 사진들과 함께 자료용 도면이나 지도등도 다 들어있어서 관련된 리포트나 답사기등을 제출하실 때 유용하실 겁니다,

목차

1. 주제 선정 배경과 일정

2. 덕수궁, 구 러시아 공사관의 지도

3. 아관파천의 역사적 배경
1) 아관파천 당시 국제정세
2) 아관파천 당시 국내정세
3) 아관파천의 결과와 그 의의

4. 답사사진과 내용

5. 답사결과와 감상

6.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주제 선정 배경과 일정
일국의 군주가 도피를 시도했다’는 드라마틱한 사건의 특성과, 그 결과로 생긴 파장이 우리 근대사의 방향을 바꿔 놓았다는 점에 주목하여 아관파천을 주제로 선정했다.
아관파천을 주제로 선정한 뒤 답사지역으로는 당시 고종이 피신했던 구러시아 공사관과 환궁 후 머물렀던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을 정했고, 중간고사가 끝난 토요일(10월27일)을 답사일로 정했다.
중략..
3. 아관파천의 역사적 배경
아관파천이란 건양 원년(1896년) 2월 11일 새벽에 조선의 군주인 고종과 그의 후계자인 왕태자(후일의 순종)가 두 대의 가마를 이용하여 궁궐을 몰래 빠져 나와 아관(俄館·러시아 공사관)으로 피난한 사건을 말한다.
(1)아관파천 당시 국제 정세
아관파천 당시 국제 정세는 먼저, 일본은 청․일 전쟁으로 요동반도를 차지함으로써 만주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조선과 만주를 탐내던 러시아는 이 일로 인하여 일본과 대립하게 되었다. 러시아는 일본의 대륙 진출을 막기 위해 프랑스, 독일을 끌어들여 일본에 대하여 압력을 행사하였고, 결국 일본은 삼국 간섭으로 인하여 요동반도를 청나라에게 되돌려주게 되었다. 한국에서 정치적 주도권을 잡으려던 일본은 러시아의 삼국간섭으로 인해 열세에 놓이게 되었다.
삼국간섭 이후 동북아의 정세는 한반도 및 만주에서의 영향력 확대문제를 둘러싸고 태평양으로 진출하려는 러시아와 한반도를 거쳐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일본의 대립양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2)아관파천 당시 국내 정세
당시 국내 정세는 러시아의 삼국간섭의 성공 이후 친러배일의 경향이 일기 시작하였으며, 김홍집의 친일 내각이 붕괴되고 명성황후를 중심으로 한 친러파가 득세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위기의식을 느낀 일본공사 미우라는 낭인들과 훈련대를 동원하여 경복궁을 침입, 명성황후를 시해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1895년 8월 20일의 을미사변(乙未事變)이다. 이 사건으로 백성들의 반일감정이 날로 커지다가 마침내 갑오개혁과 단발령을 계기로 폭발, 의병들이 봉기하게 된다.

참고 자료

『명성황후시해와 아관파천 : 한국을 둘러싼 러·일 갈등』, 이민원, 국학자료원, 2002
『한로관계100년사』, 중 이현종, 「아관파천」한국사연구협의회, 1984
『한국의 고궁』, 신영훈, 열화당, 2005
『고종황제가 사랑한 정동과 덕수궁』, 김정동, 발언, 2004
『조선의 궁궐』, 신영훈, 한국일보사, 1998
『근대건축기행』, 김정동, 푸른역사, 1999

『신궁궐기행』, 이덕수, 대원사, 2004

『서울 근 현대 역사기행』, 정재정, 염인호, 장규식, 혜안,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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