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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

저작시기 2007.04 |등록일 2008.03.28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묵자에관한고찰

목차

없음

본문내용

인류역사에서 서양의 고대 그리스 시대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만큼 비교적 짧은 시기에 다양한 사상들이 활짝 꽃핀 시대도 없다.거의 비슷한 시기에 동서양의 두 곳에서는 그 이름에 걸맞게 숱한 현인들이 쏟아져나와 제각기 세상의 이치를 논하고 바람직한 사회를 그렸으며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모색했다.그 현인들 가운데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사람으로 중국의 제자백가 중에서도 `묵자`가 있다.
사람들에게 굳이 현인들 가운데 순위를 매기라하면 아마도 대부분 공자를 첫째로 꼽을 것이다.그러나 적어도 정치사상과 실천면에 있어서 공자의 유가에 비할 만큼 당대에 큰 영향을 미친 유파는 협객과 평민계층 묵자가 창도한 묵가사상이었다.공자의 이상과 가르침은,후세에 누가 그렇게까지 높은 곳에까지 그를 올려놓았는지는 모르지만 손길은 커녕 시선도 닿기 힘든 가을 하늘과도 같은 그곳에 거하고 계신다.하지만 묵자의 사상과 행동철학은 우리네 서민의 삶에 가까이 내려앉은 잔잔한 석양처럼 얕은 곳에 내려와 있다.묵자의 사상은 지배계층이 아닌 민중의 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묵자는 맹목적 충성을 강요당하는 군주제 치하에서 활동한 인물이면서도 사람이나 국가에 충성하는 대신 ‘올바름’에 충성을 다한 사람이다.제자백가 시대에 사상가들은 한결같이 군주에게 쓰임을 입어야 자기 사상을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묵자 또한 군주들에게 자기 사상을 유세하고 다녔다.그러나 묵자는 일개 나라의 재상 자리에 앉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묵자는 무차별적인 겸애와 교리를 치국의 이상으로 삼았다.모든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공자도 노자도 ‘노예’라는 당시 최하층의 처지에 놓인 사람들까지 철학적 논의의 대상으로 끌어들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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