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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붕당정치의 전개

저작시기 2008.03 |등록일 2008.03.28 | 최종수정일 2014.10.13 한글파일한글 (hwp) | 19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조선시대 붕당의 형성과 그에 따른 당쟁의 요인과 결과를 시기별로 자세하게 정리한 글입니다.
사림의 등장 이후 동인과 서인의 분열 이후 환국 정치까지의 정치 쟁점을 정리하였습니다. 조선 중,후기 정치사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목차

조선 중기 사림 정치의 전개
서론
1. 당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2. 조선시대 정치사의 흐름
1) 선조조의 당쟁
2) 광해조의 당쟁
3) 인조조의 당쟁
4) 효종 조의 당쟁
5) 현종조의 당쟁
6) 숙종조의 당쟁
7) 경종조의 당쟁
8) 환국의 정치사적 의의

본문내용

1) 당쟁 때문에 나라가 망했는가?
당쟁 망국론·유교망국론·양반 망국론은 일제의 어용 학자들이 창안해 놓은 주장이다. 신채호 같은 한말 지식인들도 망국의 책임을 양반·유교·당쟁에 돌리고 있지만 이는 스스로를 자책하는 일종의 신세 타령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 어용 학자들은 조선은 자치 능력이 없으므로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받는 편이 낫다는 논리를 끌어내기 위해 당쟁을 이용했다. 이들은 한국인들은 단결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특히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일제 학자들이 강조하는 한국인의 단결력 부족 또는 당파성은 과거 시험으로 관리를 뽑았던 조선시대의 능력주의로 인한 역사적 소산이지 한국민의 민족성 자체가 그런 것은 아니다. 능력 위주의 경재이 심하다보면 단결이 잘 안되는 수도 있다. 일본의 경우 무사 제도 하에서 귿어진 수직적 명령 체계에서 상관의 명령에 부하는 꼼짝 못하고 따르는 관습이 단결이 잘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에 비해 문치주의·능력주의 사회인 한국 사회에서는 상대적으로 단결이 잘 안될 수 있는 것이다. 능력 위주의 경쟁 사회에서 단결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능력주의 자체를 문제시할 수는 없다. 오히려 능력주의야말로 우리가 계승해야 마땅할 정신적 자산인 것이다. 우리의 환경 속에서 민족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능력주의 덕분이었다. 이러한 능력주의의 부산물인 당파성은 교육과 제도를 통해서 개선해 나가면 된다.
일본 학자들의 주장처럼 당쟁으로 조선이 망했다고 보기보다는 오히려 사림 정치의 견제의 틀이 사라지고 일부 가문들의 세도정치에 망국의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당쟁은 사림정치의 산물이고, 사림정치는 유교적 문치주의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당쟁의 원인과 성격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동양의 유교적 문치주의의 성격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국왕이 신료들에게 권력을 나누어 준 다음에는 반드시 권력을 둘러싼 양자 간의 대립은 피할 수가 없다. 원래 신료들이 붕당을 조성해 당쟁을 일삼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16세기 이후로 사림의 도학 정치가 실시됨에 따라 국면이 달라지게 되었다. 유교 국가에서 통치자들은 도덕적 수양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이러한 주자학의 이념을 현실 정치에 활용하고자 한 것이 사림 정치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권신 세력이 무너지면서 공격 대상이 사라지게 되자 사림들은 분열하여 붕당이 생기고, 붕당 간에 당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붕당은 학연·지연을 중시했고, 그리하여 당쟁에는 지역적 대립과 혈연·학연적 대립이 수반되었다. 붕당의 정쟁 도구는 도덕적 수양 여부와 명분·의리였다. 그러나 사림의 당쟁은 근본이 권력 투쟁이었기 때문에 자기 당에 유리한 명분이나 의리를 견강부회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듯 당쟁이 사림정치의 본령을 벗어나 권력만을 추구하게 되면서 정치는 혼란스러워지고 사회는 병들어갔다. 이러한 혼란상을 방지하기 위해 창안된 것이 영·정조의 탕평정치였다. 이는 국왕의 힘으로 붕당의 뿌리를 뽑을 수 없는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고육책이었다. 그런데 탕평정치의 결과로 외척 세력이 성장했고, 그들이 무능한 국왕을 세우면서 외척들의 세도정치로 치닫게 되었다. 사림정치의 와해와 함께 더 이상의 견제 세력이 사라지게 되자 정권은 부패했다. 결국 조선은 끊이지 않는 민란에 속수무책이었고 외세의 침입에도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해 망국의 길로 들어서고야 말았다.

참고 자료

<조선시대 당쟁사1,2> 이성무, 동방미디어
<한국사 30 -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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