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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와 역사

저작시기 2007.05 |등록일 2008.03.27 한글파일한글 (hwp) | 11페이지 | 가격 2,300원

소개글

각 지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서술.

목차

1. 서론
성곽의 기원
성곽의 발달
성곽의 종류

2. 본론
경남지방의 성곽
군지역의 성곽 (창녕 화왕산성, 성산산성,목마산성 거창:거열산성, 합천 : 악견산성)
왜성 (기장 죽성리 왜성)
시지역의 성곽
(울산관문성, 동래금정산성,이산성지,합포성지,
김해죽도왜성,분산성,구포왜성,부산진지성, 기타)

3.결론

4.참고문헌

본문내용

慶南地域의 城郭現況
Ⅰ. 序論
1. 성곽의 기원
우리나라에 언제부터 성곽이 나타났는지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문헌상 나타난 것은 「史記」 조선전「朝鮮傳」에 평양성의 존재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 처음이고 이는 대체로 2세기에 해당된다. 남한지역에서는 대체로 서기 2세기 이후에 성곽이 나타나는 것으로 되어있다. 초기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김해 회현리 패총에서 성책(城柵)을 설치하였던 흔적이 발견되는 예가 있다.
2. 성곽의 발달
삼국의 성곽 시설로는 대부분 간단한 목책(木柵)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본격적인 석축에 의한 성곽은 삼국이 고대국가로 발전하기 시작한 3세기 이후에 가능했다. 목책은 나무기둥을 엮어 세워 적이 넘어오지 못하게 만든 원시적인 울타리 성이었지만 삼국시대에 많은 사례를 찾아볼 수 있으며 임진왜란 때 권율(權慄) 장군의 행주대첩에서 목책성이 주요방어시설로 활용되었다.
토성은 흙을 다져 넣어가며 쌓는 판축법(板築式)과 축조될 곳의 좌우 흙을 파내 둔덕을 쌓아 올리는 삭토법(削土法)이 있는데 판축식은 주로 평야에서, 삭토식은 산등성이에서 사용되었다. 목책성이나 토성, 석성 등은 그 출현시기가 각기 다르지만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기능에 따라 혼재(混在)해 왔으며 조선 후기 실학자들에 의해 벽돌성의 필요성이 제기 되었으나 정조(正祖)때 수원성 축성에 부분적으로 채택되었을 뿐 우리나라 성곽은 석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3. 성곽의 종류
㉠ 도성
도성은 왕궁이 있는 도읍지에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곽으로 고조선시대에 평양성의 존재가 문헌에 전해지고 있으며 삼국시대에도 도성을 쌓았다.
㉡ 산성
우리나라 성곽의 대표적인 형태는 산성이다. 산의 자연적인 지세를 최대한 활용하여 능선에 따라 용이 산허리를 감듯 꾸불꾸불 기어 올라가는 산성은 자연에 순응하고 동화하려고 했던 우리선인들의 생각을 잘 나타내고 있다.
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어 고려, 조선시대에 걸쳐 널리 유행하였던 형식이다. 조선초기에는 759개소의 성곽이 전국에 있었는데 이 가운데 산성이 182곳으로 가장 많았다.
산성은 험한 지형을 이용하여 쌓기 때문에 적으로부터 쉽게 노출되지 않고 또 성에서 오랜 항전을 계속할 수 있도록 모든 시설을 갖추었다. 성벽은 산꼭대기로부터 골짜기에 걸쳐 고리모양으로 돌아나가고 가장 낮은 쪽 근처에 성문과 수구를 설치하고 가장 높은 곳에 망루를 세웠다. 산성은 대체로 골짜기를 감싸고 축조되므로 성안에 많은 병마를 주둔시킬 수 있었고 군량, 창고, 병영, 장대 등의 시설을 갖추었다. 성벽과 관련된 시설물로는 성문, 옹성, 여장, 치(雉), 각루(角樓), 암문(暗門), 수구 등이 있었다.

참고 자료

1. 韓國의 城郭 (빛깔있는책들) 반영환, 1991 대원사
2. 두산 백과사전
3. Naver 백과 사전
4.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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