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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보문헌비고 조사

저작시기 2007.12 |등록일 2008.03.25 한글파일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증보문헌비고 조사 자료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인출활자 ; 신활자(신연활자).
조선 시대에 우리나라의 상고로부터 대한 제국 말기에 이르기까지의 문물·제도를 분류하여 정리한 책.
우리나라의 유서로는 최대 규모의 책이며, 국학연구의 지침서로 많이 활용되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인용서목이 분명하지 않은 곳도 있다. 실록은 어느 왕 몇년만 기록했다. 워낙 많은 주제를 포용했으므로 조선 초기 이전의 사실은 잘못 이해한 부분도 있고 중요한 사실을 빠뜨린 경우도 많으므로 이것만으로 제도변천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위험하다. 또 원사료에서 부분만 인용한 경우도 많으므로 이용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1.편찬경위
중국에는 당나라 때 두우(杜佑)의 〈통전 通典〉을 위시하여 원나라 마단림(馬端臨)의 〈문헌통고 文獻通考〉등 십통(十通)이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책이 편찬되지 않았다. 17세기 이후 중세사회 체제의 동요가 심해지자 영조·정조 대에 국가체제 전반에 대한 검토와 정비작업이 시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문헌비고 편찬사업도 시작되었다.
1770년(영조 46) 12월 24일 왕명으로 문헌비고 찬집청을 설치하고, 홍봉한(洪鳳漢)을 도제조(都提調)로 하여 당상과 낭청을 각각 9명씩 임명했다. 영조는 완성할 때까지 낭청들을 찬집청에서 숙직하게 할 정도로 편찬을 서둘렀다. 그 결과 9개월 만에 상위(象緯)·여지(輿地)·예(禮)·악(樂)·병(兵)·형(刑)·전부(田賦)·재용(財用)·시적(市糴)·선거(選擧)·학교·직관(職官)의 13고로 편찬하여, 〈동국문헌비고〉라는 이름으로 100권 40책을 인쇄했다. 그러나 오류와 빠진 것이 많아 1782년(정조 6) 2월에 증정사업을 시작했다. 이때는 관청을 설치하지 않고 이만운(李萬運:1736~97) 개인에게 일임하여 보수하게 했다. 그는 〈동국문헌비고〉를 교정하는 한편, 1770~90년에 변동된 사실을 추가했으며, 새로 물이(物異)·궁실(宮室)·왕계(王系)·예문(藝文)·씨족(氏族)·시호(諡號)·조빙(朝聘) 등 7고를 편찬해 추가했다.

참고 자료

한국민족문화사전(http://www.encykorea.com/encykorea.htm)
브리태니커백과사전(http://www.britannica.co.kr/)
두산백과사전(http://www.encyber.com/index.html)
박문열(2001), “금속활자장”, 화산문화 , 중요무형문화제 제 101호
손보기(2000), “금속활자와 인쇄술”,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교양국사총서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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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열(2001), “금속활자장”, 화산문화 , 중요무형문화제 제 101호
손보기(2000), “금속활자와 인쇄술”,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교양국사총서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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