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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사] 신채호 선생의 조선혁명선언과 민중사관

저작시기 2008.03 |등록일 2008.03.25 한글파일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700원

소개글

교양 한국문화사 시간에 쓴 신채호 선생의 조선혁명선언과 민중사관에 대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신채호 선생의 조선혁명선언과 민중사관>
조선혁명선언은 단재 신채호(申采浩) 선생이 개천 4380(1923)년 1월 의열단(義烈團)의 독립운동이념과 방략을 이론화하여 천명한 선언서로 의열단은 1919년 11월 만주 길림성에서 김원봉(金元鳳) 등 한국독립운동자 13명으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로서 암살·파괴·폭동 등 폭력을 그들의 중요한 운동방략으로 채택하였다.
그들은 파괴의 다섯 가지 대상으로 조선총독부·동양척식회사·매일 신보사, 각 경찰서 및 기타 왜적의 중요기관으로 정하여 `오파괴(五破壞)`라 하였고, 암살의 일곱 가지 대상으로 조선총독과 고관, 일본 군부수뇌·대만총독·매국노·친일파 거두·적탐(밀정) 및 반민족적 토호열신(土豪劣紳) 등을 열거, `칠가살(七可殺)이라 하였다.
1920년부터 큰 성과를 보이기 시작한 의열단은 그들의 활동을 가능하게 한 이념의 정립에는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다 의열단의 폭력적 독립운동에 대하여 비판과 비난이 일어나게 되자 그들은 독립운동의 이념 및 방략을 정립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의열단이 신채호에게 성명문을 요청한 것은 이 때문이다.
1910년 4월 망명길에 오른 신채호는 1919년 임시의정원에 참여하면서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에 관여하였으나 같은 해 9월부터는 반(反)임시정부 활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국민대포회의의 개최가 확정된 뒤 1922년 12월, 신채호는 의열단의 김원봉으로부터 상해(上海)에 있는 그들의 폭탄제조소를 시찰하고 의열단 선언문을 작성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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