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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사의 요약과 요동사에 대한 비판을 정리함.

저작시기 2007.03 |등록일 2008.03.24 한글파일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1,400원

소개글

동북공정으로 시끄러울때 요동사는 해결책이 되는 줄알았다.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에 배척 당한 요동사를 읽고
그게대한 비판을 정리 해 보았다.

목차

1. 요동사 요약
2. 비판을 통한 요동사 이해

본문내용

예로부터 고구려사는 한국사의 한 부분에 포함되어 왔다. 그리고 민족주의가 지배적인 현대사회에서는 고구려사의 위상이 한국사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근래 중국의 역사학계에서도 고구려사를 그들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경향이 보인다. 이에 대하여 한국사학자들은 그를 부당한 개입으로 인식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사상의 고구려사와 중국 사상의 고구려사는 각 나라를 형성한 순차적인 과정에 따라, 고구려사를 각각 자국의 역사 체계로 편입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고구려사의 편입은 불가피한 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고구려사를 한국사와 중국사중 어느 곳의 역사에 편입시킬 것인가의 문제는 고구려가 둘 중 어느 나라에 귀속되는가 와는 전혀 다른 문제다. 따라서 고구려사 귀속 문제는 논리적 기준에 따라 철저하게 분석해야만 한다.

고구려가 한국의 일부인가 중국의 일부인가 하는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중국은 특정한 ‘나라’의 명칭이었고 고구려는 특정한 ‘국가’의 명칭이었음을 반드시 인지해야만 한다. 따라서 고구려가 과연 어느 나라에서 수립되었는가를 따져보는 것이 고구려사의 귀속 문제를뚜렷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구려가 강성했던 시기를 따져보았을 때, 공간적 범주는 한국과 중국 두 나라를 모두 포함하고 있지 않다. 공간적 범주에 비례하여 볼 때, 고구려는 요동이라는 지역에 세워진 것이다.
요동이라는 새로운 지역의 국가로 자리 잡은 고구려가 도읍지를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천도한 것은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고구려가 요동국가에서 한국을 아우르는 통합 국가로 발전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구려사는 천도 이전, 이후로 나누어야 한다.
하지만 고구려가 요동과 한국의 일부를 통합한

참고 자료

요동사 - 김한규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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