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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탈춤와 양주별산대놀이 비교 연구

저작시기 2007.10 |등록일 2008.03.23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봉산탈춤은 황해도 봉산군 길양리에서 전승되던 탈춤으로, 서울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산대도감 계통의 탈춤이다. 그 근원은 산대도감 계통극의 해서탈춤에 두고 있으며, 19세기말 이래로 해서(海西) 탈춤의 대표적인 놀이였다. 봉산은 황주(黃州), 평산(平山)과 함께 ≪팔역지(八域誌)≫의 소위 남북직로상(南北直路上)의 주요한 장터의 하나로 농산물과 수공업 생산물의 교역지이로 탈춤공연의 경제적 여건이 갖추어져 있었다. 봉산탈춤은 다른 지방의 탈놀이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받아들이면서 개량하였고 명수들의 배역과 뛰어난 연기로 주위에 명성을 떨쳤고 19세기 말 20세기초에 걸쳐 강령탈춤과 함께 황해도 탈놀이의 최고봉을 이루었으며, 1930년대에는 이동벽, 김진옥, 민천식 등이 전수하여 월남하였고, 이들에게서 채록하여 서울에서 전승이 가능해졌다 1967년 중요 무형문화재 제17호 지정되어 보호, 전수되고 있다.

목차

1.가면극
2.봉산탈춤
3.양주별산대놀이
4.봉산탈춤과 양주별산대놀이 비교

본문내용

1. 가면극

(1)가면극의 기원
한국의 민속극은 가면극, 꼭두각시놀음, 발탈 등이 전승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면극은 대표적인 민속극으로, 일찍이 1920년대에 학문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동안 가면극을 민족문화의 유산으로 인식하여 이를 보존하고 창조적으로 계승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과 함께, 여러 학자들이 이룩한 업적과 연희자들의 노력에 의하여 가면극은 발굴·전수·연구되기에 이르렀다. 가면극은 종합예술의 성격을 띠고 있어, 문학·민속학·연극·음악·무용·복식 등 여러 분야에서 각각 나름대로의 연구가 진행되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연구가 진척되면 될수록 새로운 측면에서의 고찰이 가능해지고, 새로운 연구과제가 발견되기 마련이다. 그동안 이룩된 성과에 의하여 가면극의 실상이 점차 밝혀지고, 가면극이 살아 있는 민속예술로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아직도 가면극 연구에 참여한 학자들 사이에는 대립된 문제들이 많이 남아 있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가면극의 역사적 연구에서 가장 논쟁이 심했던 것은 가면극의 기원에 관한 연구이다. 그동안 제시된 가면극의 기원론은 크게 산대희기원설·기악기원설·제의기원설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가면극의 발전과정에 대하여는 이상의 여러 기원설을 종합한 견해가 자주 제시되었다.

⑴ 산대희(山臺戱)기원설
안확(1932)은 처용무·나례·산대희를 같은 것으로 보았다. 즉 나의(儺儀)가 신라시대에 처용무가 되고 고려시대에 내려와 산대희가 되었는데, 산대희가 바로 조선시대 산대도감극의 전신이라는 견해이다. 김재철(1933)은 가면극이 고대의 제의에서 출발하여 신라의 연희와 고려의 산대잡극을 거쳐 조선의 산대도감극으로 발전하여 왔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두현(1969)은 산대희기원설을 더욱 발전시켜, 가면극의 기원을 서낭제 탈놀이와 산대도감계통극으로 나누어 논의했다. 하회별신굿탈놀이, 강릉관노가면극 등 서낭제에서 놀았던 서낭제 탈놀이는 서낭제에서 기원해 발전한 토착적 가면극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서울 근교의 산대놀

참고 자료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 홈페이지 (http://sca.visitseoul.net/intro/intro.htm)
봉산탈춤보존회 (http://www.bongsantal.com/)
문화재청 문화재정보센터 (http://info.cha.go.kr/)
양주별산대놀이 공식홈페이지 (http://www.sandae.com/)
탈벗회홈페이지 (http://www.talbot.pe.kr/)
한국의탈 (http://myhome.naver.com/greenwinter/)
고려대학교 마당극패 탈람 (http://www.kutal.x-y.net/)
봉산탈춤 - 전경옥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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