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송건호에 관해서

저작시기 2007.11 |등록일 2008.03.22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200원

소개글

한국 언론인 송건호에 관하여

목차

1. 출생
2. 대한통신 외신기자에서
동아일보 편집국장까지
3. 월간‘말’창간
4. 국민주 ‘한겨렉신문’창간
5. 옥천신문의 송건호 칼럼
6. 송건호 언론상의 제정

본문내용

▲ 송건호 (1927∼2001)
40여 년간 언론의 외길을 걸어온 민주언론운동의 산 증인이자 『한겨레신문』의 창간 주역이기도 한 청암(靑巖) 송건호는 1999년 11월 11일 김대중 정부로부터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이 기쁜 소식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난 80년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모진 고문을 받은 후유증으로 90년 이후 파킨슨 증후군을 앓다가 97년에는 폐렴까지 겹쳐, 8년 동안 온몸이 마비되는 투병 생활을 하던 끝에 2001년 12월 숨졌다. 2001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은 송건호 선생은 향년 76세의 나이로 2001년 12월21일 광주 518국립묘지에 안장됐다.

1. 1926년 군북면 비야리 출생
1927년 9월 27일 충청북도 옥천 출생인 송건호는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일본이 우리나라이고 대동아전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할 만큼 일제의 식민 교육에 길들여 있던 학생이었다. 그러나 대학에 진학할 때쯤 그를 지칭하는 ‘반도인’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되면서 서서히 민족의식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해방이 되던 해 경성법과전문학교에 입학한 송건호는 그 이듬해 서울대 법과대학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2. 대한통신 외신기자에서 동아일보 편집국장까지
1953년 대학에 재학 중이던 그는 『대한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투신했다. 행정학을 공부한 그가 관리가 아닌 언론계에 투신한 이유는 그 나름대로의 뚜렷한 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분단 조국에서는 관리를 안 하기로 결심했어요. 그래서 법과대를 나왔지만 절대로 관리를 안 하고 신문사로 들어갔지요.” 같은 해에 그는 40명의 지원자 가운데 단 한 명을 뽑는 『조선일보』 외신부 기자에 합격했다. 시험 문제는 신문 사설을 영어로 옮기는 것이었는데, 철도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이미 미군부대 교통반 통역을 맡은 적이 있었던 그는 치열한 경쟁을 물리치고 『조선일보』 외신부 기자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변변치 않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돈 되는’ 출입처를 마다하고 내근을 하는 외신부 기자만을 계속 맡은 송건호는, 도시락을 싸들고 출근하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또 일했다. 그는 서른세 살이던 60년에 『한국일보』의 논설위원이 되었고, 서른여덟 살에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맡았다.

참고 자료

강준만, 편집부 <시사인물사전 1> 인물과사상사. 1999년 12월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