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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유부벽정기 [醉遊浮碧亭記] 의 원문 및 해석, 해설

저작시기 2005.07 |등록일 2008.03.16 한글파일한글 (hwp) | 15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의 한문 소설집 《금오신화(金鰲新話)》에 실린 5편 중 한 단편.

목차

없음

본문내용

<원문>
平壤, 古朝鮮國也. 周武王克商, 訪箕子 陣洪範九疇 之法, 武王封于此地, 而不臣也. 其勝地, 則錦繡山 鳳凰臺, 綾羅島, 麒麟窟, 朝天石, 皆古跡, 而永明寺浮碧亭, 其一也

<각주 용어 풀이>
1. 봉황대는 평양 서남쪽 10리에 있는 대(臺)모양의 바위이다. <신증독국여지승람>에 보면, 다경루 서쪽에 있다고 하였다.
2. 능라도는 평양 동북쪽 4리에 잇는 섬으로 둘레가 12리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면 백은탄 북쪽에 있다고 하였다.
3. 기린굴은 부벽루 아래에 있는 굴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평안도 평양부의 조에 ‘기린굴은 구제궁 안, 부벽루 아래에 있다. 고구려 동명왕이 기린마(麒麟馬)를 여기서 길렀다 하는데, 뒷사람이 비석을 세워 기념하였다. 동명왕이 기린마를 타고 이 굴로 들어가 땅속에서부터 조천석으로 나와 하늘로 올라갔으며, 말발굽 자국이 돌 위에 있다고 전한다.
4. 조천석은 기린국 남쪽에 있는 돌 이름으로, 고려 이승휴(李承休)의 시에 ‘하늘로 왕래하며 하늘 정사에 참예했으니, 조천석 위에 기린의 말굽이 가벼웠네’라고 하였다.
, 楸南墟 추남허는 터 이름이지만 어느 곳인지 알 수 없다.

<해석>
평양은 옛 조선의 서울이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이기고서 기자를 방문하자, 기자는 홍범구주의 법을 일러 주었다. 그래서 무왕은 기자를 이 땅에 봉하였고, 신하로 삼지 않았다. 평양의 명승지로는 금수산, 봉황대, 능라도, 기린굴, 조천석, 추남허 등이 있는데, 모두 다 옛 유적지다. 영명사와 부벽정도 그런 유적지 가운데 하나다.
영명사는 바로 고구려 동명왕의 구제궁터였다. 이 절은 성 밖 동북쪽으로 이 십리 되는 곳에 있다. 긴 강물을 굽어보고 평탄한 들판이 멀리 바라다 보여 시야가 끝이 없다. 진실로 경치가 뛰어난 것이다. 화려한 유람선과 상선(商船)들이 저녁에 대동문 밖 버들 숲 우거진 낚시터에 정박한다. 사람들이 거기 머물러 놀게 되면, 반드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서 이곳 영명사와 부벽정을 마음대로 구경하고 실컷 즐기고는 돌아갔다. 부벽정의 남쪽에는 돌을 다듬어 만든 층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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