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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저작시기 2006.09 |등록일 2008.03.13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조선통신사에 관한 조사 레포트

목차

-조선통신사

조선통신사의 정의

조선통신사의 의미

파견의 동기

파견의 목적

파견의 규모

파견의 절차


-근세 이전 조선과 일본과의 문화교류


-그림으로 알아보는 조선통신사


-조선통신사의 현재


-맺음말


-참고논저 및 출처

본문내용

조선통신사의 정의
조선시대 조선에서 일본의 막부(幕府)장군에게 파견되었던 공식적인 외교사절
1404년(태종 4) 조선과 일본 사이에 교린관계가 성립되자, 조선국왕과 막부장군은 각기 양국의 최고 통치권자로서 외교적인 현안을 해결하기 위하여 사절을 각각 파견하였다. 이때 조선국왕이 막부장군에게 파견하는 사절을 통신사, 막부장군이 조선국왕에게 파견하는 사절을 일본국왕사(日本國王使)라고 하였다.


조선통신사의 의미
통신은 두 나라가 서로 신의(信義)를 통하여 교류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조선에서 일본에 파견한 사절의 명칭은 보빙사(報聘使) ·회례사(回禮使) ·회례관(回禮官) ·통신관(通信官) ·경차관(敬差官) 등 다양하였다. 일본에 파견된 사절단에 통신사의 명칭이 처음 쓰인 것은 1413년(태종 13) 박분(朴賁)을 정사로 한 사절단이었지만, 중도에 정사가 병이 나서 중지되었다. 그뒤 통신사의 파견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1429년(세종 11) 교토[京都]에 파견된 정사 박서생(朴瑞生)의 사절단으로 최초의 통신사라고 할 수 있다. 파견목적은 임진왜란 전에는 주로 왜구 금지요청이 주가 되었으나, 그 후에는 강화와 포로들의 쇄환(刷還), 일본국정의 탐색이었고, 1636년(인조 14) 이후는 막부장군의 습직(襲職) 축하가 주임무였다. 그러나 그 역사적인 의의는 조 ·일 양국간만이 아니라, 중국을 포함하는 동아시아 삼국의 평화공존을 위한 국제관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데 있다.


파견의 동기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왜구의 잦은 침략에 대비하여 세종대왕 때에는 이종무가 왜구의 소굴인 대마도의 토벌로 노략질이 어렵게 되자 왜구는 조선에 교역을 요청하였고 조선은 일본의 간청으로 3개의 항구를 개항하여 식량과 옷감, 구리 등으로 바꾸어 주었다.
일본인들은 이 곳에 살면서 장사를 할 수 있었으나 함부로 돌아다니지는 못하도록 엄격히 통제하였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양국 국교가 단절되었으나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었다. 그 후 일본의 새로운 지배자가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의 침략을 깊이 반성하고 두 나라 사이의 우호관계를 회복하고자 통신사 파견을 요청하였다. 통신사란 서로 신뢰로 통하는 사절이라는 뜻이다. 일본은 임진왜란 때 강제로 잡혀간 조선 사람들을 조선으로 다시 보내고 조공을 받치며 다시는 조선을 침범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참고 자료

BESETO vol.81,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네이버 백과사전


‘조선통신사의 일본 견문록’ 강재언 이규수역 한길사


연합뉴스 기사 (2006년9월21일 기사 박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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