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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정제

저작시기 2006.11 | 등록일 2008.03.11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3페이지 | 가격 900원

소개글

옹정제 서평 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옹정제는 전형적인 평전에 가깝다. 인덕정치를 시행한 아버지와 달리 천명론을 내세워 엄격한 원칙주의로 나라를 경영한 옹정제는 외척과 관료들에 대한 철저한 견제와 감시로 공정한 군주독재체제를 구축했다. 청왕조를 백성을 위한 천명이라고 보았던 그는 왕조의 존립과 국가기강을 위해서는 여러 형제들은 물론 일가붙이도 냉혹하게 처형하거나 유배시켰으며 붕당과 관료주의 폐단을 실감하고 하루 4시간만 자는 엄격한 생활로 개혁정책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조선의 정조처럼 엄격한 개혁정치는 사후 다시금 관용정치로의 반동을 가져왔다. 아무리 엄정하고 공명정대한 정치가라도 개인의 능력에 통치를 의존하는 독재적 정치체제는 영속될 수 없다는 지은이의 냉철한 말미 결론을 새겨볼 만하다.
1637년 3월 25일, 조선 국왕 인조는 초라한 복장으로 남한산성을 나섰다. 이윽고 그는 삼전도에서 청 태종 홍태시에게 항복했다. 높다랗게 쌓은 수항단위에 거만하게 앉은 홍태시에게 세 번 큰절을 올리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렸다.
홍태시란 `붉고 큰 돼지`를 뜻한다. 만주족을 멸시하던 조선이 태종을 부르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인간`이 아닌 `돼지`에게 인조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병자호란은 그렇게 끝났다. 이후 조선 지식인들은 저주를 퍼부었다. ``네까짓 오랑캐들의 운수가 얼마나 더 가겠느냐``고. 그로부터 7년 후 청은 베이징을 차지하고 한족의 왕조인 명나라를 대신해 중원의 주인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순치제, 강희제, 옹정제 등 성군들이 잇따라 즉위하면서 국운은 날로 융성했다. ``오랑캐의 운세는 100년을 못 간다``고 했던 조선 지식인들의 믿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참고 자료

1. 한겨레 | 2001/07/19

2. 동아일보 | 2001.03.24

3. 중앙일보 | 2001.02.03

4. 문화일보 | 2001.01.31

5. 조선일보 | 2001.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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