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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 전태일 열사 분신자살사건 영향

저작시기 2007.04 |등록일 2008.03.05 한글파일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사회학 첫시간 과제로 현대사회에 미친 사건 하나 조사해오기가있었습니다.

거기서 저는 노동운동사에 큰 영향을 끼친 전태일 열사의 사건을 조사했고 조사한것을 토대로 작성한 리포트 입니다.

목차

1. 전태일(열사) 분신 자살사건 이란?
1)사건의 시대적 배경
2)평화시장의 노동환경

2. 전태일(열사) 그는 누구인가 ?

3. 전태일(열사) 분신자살 사건이 갖는 의미

본문내용

◎전태일(열사)분신자살사건 (1970年 11月 13日)

1. 전태일(열사) 분신 자살사건 이란?
1970년 11월 13일 서울 동대문의 평화시장 앞에서는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바꾼 사건이 일어났다. 평화시장 피복공장의 재단사이자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던 22살의 전태일이 온 몸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여,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고 외치며 평화시장 앞을 달리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외마디 말을 남기고 쓰러진 뒤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숨을 거둔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1)사건의 시대적 배경

전태일이 평화 시장 노동자로 살았던 1960년대 후반은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가 본격화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구 지배계층인 지주층이 몰락한 자리에 자본가 계급이 새로운 지배계층으로 빠른 속도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 개발에 가속도를 붙이기 위해 대자본이든 중소/영세 자본이든 가리지 않고 자본가들을 철저하게 비호했고, 반공 이데올로기와 무단적 노동 탄압을 통해 가혹한 초과 착취를 보장했다. 전쟁 기간에 만들어진 근로기준법도 완전히 사문화되었다.

2)평화시장의 노동환경

60년대의 공업화 전략은 섬유였고, 그 중에서도 의류산업의 중요도는 더욱 컸다. 의류산업의 번영을 통해 광범위한 중소, 영세 자본가들이 만들어졌으며, 대기업의 대부분도 의류산업의 수출을 통해 돈을 벌었다. 이러한 의류산업의 중심에는 바로 평화시장이 있었다. 당시 평화 시장은 근처의 통일 상가와 동화시장과 함께 전국 기성복의 70%를 공급하는 의류산업의 메카로 기능했다. 하지만 평화 시장 일대의 이러한 번영이나 업주들의 치부와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거기에서 일하는 ‘산업 역군’, 즉 노동자들의 근로 조건은 실로 참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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