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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지방의 패총

저작시기 2006.09 |등록일 2008.03.05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3,000원

소개글

남해안 지방의 패총에 대한 글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貝塚이란
Ⅲ. 鐵器時代 貝塚의 形成원인
Ⅳ. 鐵器時代 貝塚形成배경에 대한여러 견해
Ⅴ. 鐵器時代 貝塚의 形成
Ⅵ. 맺음말
Ⅰ. 머리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우리가 이번에 답사를 가게 되는 부산, 경남 일대의 남해안 지방은 일찍이 조개더미(貝塚) 문화가 발달한 지역이다. 이는 남해안 지방이 南海라는 바다를 끼고 있다는 자연환경적인 측면이 아주 강하다고 행각한다. 남해안 지방의 신석기 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선사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패총 유적은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더욱이 패총은 유적의 특성상 유기물 등이 잘 보존되기 때문에 토기나 석기, 기타 자연유물이 잘 남아 있고 이를 통해 당시 환경과 문화를 판단할 수 있기도 한다.
본고에서는 남해안 지역의 경우는 신석기시대와 청동기 시대를 거쳐 특히 철기시대에 이르러 패총이 급격히 증가하게 되는데, 이시기의 패총 형성과 관련된 여러 가지 견해와 원인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Ⅱ. 貝塚이란
패총이란 대부분의 연체동물, 조가비들과 함께 문화 유물 및 자연유물(짐승뼈, 숯, 부스러기등)이 들어있는 퇴적물을 가리킨다. 각 퇴적물에 들어 있는 조가비의 양은 유적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비율이 30%정도만 되어도 순수한 조가비로 구성된 듯이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패총의 크기는 다양하며, 바닷가에 발달되어 있고 규모가 큰 조개더미는 살림터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패총은 바다식량을 보편적으로 이용하였던 중석기시대부터 형성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들이 왜 패총에 눈을 돌리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세가지 견해가 있는데, 첫째는 가장 대표적인 견해로써 조개는 영양가도 낮고 하루 필요 열량 가운데 큰 몫은 못되지만 일종의 비상식량이자 보조식품이며 항상 손쉽고 안전하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인구유지 및 정착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인데 이는 양의 문제보다 사냥, 채집 경제에 안전성을 부여하는 요소라고 보는 것이다.
둘째는 바다식량을 낮게 평가하는 견해로서, 이들은 육지의 식량에 비해 생산성이 낮고 영양가도 낮으며, 먹을 수 있는 부분도 적지만 인구밀도가 높아가는 상황에서 식량자원이 자꾸 줄어들어 사람들 사이에 상당한 긴장이 생겨나게 되자 바다조개, 물고기류 등을 이용하기 시작했다고 본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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