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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사상과 개화사상의 가교 - 최한기(崔漢綺)

저작시기 2008.03 |등록일 2008.03.05 한글파일한글 (hwp) | 14페이지 | 가격 1,200원

소개글

실학사상과 개화사상의 가교 - 최한기(崔漢綺)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생애와 저작
2. 인식론
≪전기의 인식론≫
① 통의 구조
② 추측의 구조
≪후기의 인식론≫
≪주자학적 인식론의 비판과 극복≫
3. 인간관
≪인간이해의 기본틀≫
≪인간의 자연적 구조≫
4. 과학 실학
5. 근대적 사회 인식
6. 그의 학문이 남긴 것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생애와 저작
최한기崔漢綺는 1803년(순조 3) 빈궁한 양반 가문에서 최치현崔致鉉의 독자로 태어났다. 자는 지로芝老이고, 호는 혜강惠岡 ․ 명남루明南樓이다. 10세 때 아버지 최치현崔致鉉이 세상을 떠나 그는 종숙인 최광현의 양자로 들어갔다. 세보에 따르면 직계 조상 중 무려 10여 대에 걸쳐 단 한사람의 문과급제자도 없을 정도로 그의 가문은 명색만이 양반이었던 궁반한족窮班寒族에 속하였다.
이러한 조건에서 성장한 최한기 역시 생원에 그쳤을 뿐 벼슬을 하지 않았다. 그가 벼슬을 하였다면 그의 나이 70세 때 그의 장남 최병대崔炳大가 조정의 시종신侍從臣이 되어 추천으로 주어진 통정첨지通政僉知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벼슬자리는 양반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하찮은 것이었다. 이처럼 명색만 양반일 뿐 실제로는 빈궁한 형편이었기 때문에 그는 피지배 계층과 고락을 같이 함으로써 그들의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그 개선의 절박성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 탓인지 방대한 저술과 학문적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를 알려주는 기록은 거의 없다. 서얼 출신인 이규경과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와 사귀었다는 사실 정도가 알려져 있다.
최한기는 일생 동안 빈궁한 처지에서 저작에만 몰두하다가 1873년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였으며 과학과 진리의 열렬한 옹호자였다. 천문학 ․ 지리학 ․ 수학 ․ 생리학 ․ 철학 등 모든 분야에 조예가 깊었으며, 일생 동안 자신의 연구 성과를 개괄한 수많은 저서를 썼다. 이것들은 모두 『명남루전집明南樓全集』에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신기통神氣通」과 「추측록推測錄」은 조선 철학사에 지울 수 없는 영향을 준 탁월한 철학 저술이다.

최한기의 자는 운로이고 본관은 삭녕이다. 사마시의 진사로 재주가 뛰어나 일찍이 여러 서적을 공부하고 또 저술하였다. 많이 기억하고 넓게 공부하였으니 범속한 선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오주연문장전산고, 이규경-

참고 자료

한국철학사상사, 한국철학사연구회, 심산, 2005
혜강 최한기, 권오영, 청계, 2000
실학파의 철학사상, 예문서원
운화와 근대, 박희병, 돌베개, 2003
최한기의 철학과 사상, 최영진, 철학과 현실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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