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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화약무기 발달사

저작시기 2008.02 |등록일 2008.02.29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5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조선 시대의 화약무기 발달사에 대하여 여러 사료적 자료들을 근거로 작성한 리포트 입니다. 각각의 유적과 유물들에 대하여 사진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목차

■ 서 론

1. 화약무기가 가지는 의미


■ 본 론

1. 조선시대 화약 무기 발달사
1-1. 조선전기 화약 무기의 발달사
1-2. 조선중후기 화약 무기의 발달사

2. 기타 화약 무기

3. 화거(화차)


■ 결 론


♣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조선시대 화약무기 발달사

1-1. 조선 전기의 화약무기 발달사
명궁으로 소문이 났던 조선 태조는 화약무기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태종은 왜구와 야인을 정벌하기 위한 화기의 제작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태종 15년에는 군기감의 화통 수가 1만여 자루에 이르렀다. 하지만 당시에는 화포 제조기술이 아직 미숙하여 대형 총통인 천자포와 지자포 그리고 현자포도 사거리가 400~500보에 불과했고 가자포와 세화포는 사거리가 200보에도 미치지 못했다. 반면에 편전은 사거리가 300보나 되고 연사속도도 훨씬 높았기 때문에 일부 신하들은 지자포, 현자포, 세화포 등을 모두 깨버리자는 주장까지 했다고 한다.
이에 세종은 행궁 옆에 대장간을 마련하고 직접 화포의 사거리 개선을 독려한 결과 모든 총통의 사거리가 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으며 하나의 총통으로 4개의 화살을 동시에 발사하는데 성공했다. 세종 대에 개발된 화포들은 대부분 철환 대신 화살을 장전하여 발사했다. 이 시기의 화포는 아직 내구성이 높지 못해서 커다란 철환을 쏘면 포가 파열될 위험이 있었고 작은 철환을 대량으로 넣고 쏘면 넓은 각도로 방사되어 사거리가 짧았다. 반면에 화살은 사거리가 길고 정확성도 높았다. 따라서 조선 전기의 화포 개량은 보다 많은 화살을 보다 먼 거리로 날려보내는데 집중되었다.

1-2. 조선 중·후기의 화약무기 발달사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부터 불랑기와 조총 등 여러 가지 신형 총통이 전래되었지만 도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오다가 왜군의 번쩍이는 불방망이의 위력을 실감한 이후에 조선은 최신예 소화기의 중요성을 인지하게 된다.
하지만 1년 5개월이 지난 1593년 9월 중순에서야 전라좌수영에서 조총을 제조하는데 성공하고 그 이후 전국에 생산량을 확대시켰지만 연간 조총 생산량은 3400여정에 불과 했다. 수만정을 가지고 참전한 왜군들에 비하면 적은 규모였고 1정당 포목 1필이 드는 예산 또한 파천하기 바쁜 조정이나 군현에서 감당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참고 자료

▣ 참고문헌 ▣

한국무기발달사, 국방군사연구소, 1994
조선의 무기와 갑옷, 가람기획, 2004
조선역사 바로잡기, 가람기획, 2000

◉ 참고 인터넷 사이트 ◉

http://www.warfog.net/books/wave/waveappe/korweapon/%C0%D3%C1%F8%BF%D6%B6%F5%20%B4%E7%BD%C3%20%C1%B6%BC%B1%B1%BA%20%B9%AB%B1%E2%C3%BC%B0%E8.htm

http://www.warfog.net/books/wave/waveappe/japweapon/%C0%CF%BA%BB%B1%BA%B9%AB%B1%E2%C3%BC%B0%E8.htm

http://majestyperson.com.ne.kr/imjinarm.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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