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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부버의 만남교육

저작시기 2005.06 |등록일 2008.02.26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1,800원

소개글

마르틴 부버의 만남교육

목차

들어가며

1. 마르틴 부버와 하시디즘

2. 만남의 철학
2.1 인간의 이중적 태도
2.2 대화적관계
2.3 연구방법론

3.교육철학
3.1 실존적교육관과 만남의 교육
3.2 1)인간, 2)가치, 3)사회, 4)평화 교육론
3.3 교사-학생 관계론

4. 교육적원용사례

5. 부버의 만남 철학을 통한 한국 교육 진단

나오며

본문내용

들어가며
현대사회가 앓고 있는 가장 큰 질병은 아마도 비인간화 현상일것이다. 이러한 비인간화는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로 본래적 교육기능이 상실된지 오래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앞으로의 교육은 전인교육으로 전환하는 것이 당면한 과제일 것 이다. 마르틴 부버에게서 전인교육에 대한 철학을 살펴볼 수 있다. 양차대전의 비극을 겪으면서 부버는 현대인이 과격한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사이에서 방황하면서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존엄을 상실하는 무방향성의 딜레마에 빠져있음을 지적하였다. 동시에 그는 현대의 시대적 상황을 “병든시대”로 표현한다. 그래서 인간들은 “영혼의 양식”을 갈구하며 이러한 시각에서 정신적 본질을 추구하고 황폐한 현대인의 삶을 회복시키고자 노력한다. 부버는 인간의 본래적 모습인 인간과 인간간의 참된 관계형성, 즉 만남의 철학을 통해 회복시키려한다. 인간은 더불어 사는 존재들이며 이는 대화적 상황에서 긍정적으로 표현되는 것 이다. 교육 또한 참다운 인간관계속에서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져야 성립되는 것으로 부버는 “모든 참된 삶은 만남”이라고 말한다. 결국 진정한 의미의 학습은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만남의 교육철학을 주목하게 된다.

1. 부버의 생애와 하시디즘
부버는 1878년 2월8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탄생했고 그의 부모는 평범한 중산층의 유대인이었다. 그러나 부모의 이혼으로 조부집 에서 살았는데 조부인 솔로문 부버는 히브리어 학자이고 히브리문학의 권위자였다. 조부의 영향으로 부버는 어렸을 때부터 유대 고전뿐만이 아니라 칸트, 괴테, 쉴러 등과 같은 저작을 공부하였다. 또한 조부는 부버와 함께 산책을 나가곤 했는데 책뿐만 아니라 자연도 사랑하는 것을 학습하게 하였다. 부버는 아홉 살 되었을때 부터 농장에서 여름을 보냈는데 하시딕 공동체에서 하시딤 하시디즘을 신봉하는 무리로 하나님과의 언약에 충실한 자들을 말 한다
을 접하게 된다. 말년에 부버가 회고하길 하시딤에서 발견한 것은 “살아 숨 쉬는 휴머니티의 기원, 진정한 공동체, 그리고 가이던스개인이 자기 자신에 대하여 깊이 이해하고 자기실현을 위하여 노력함으로써 개인적으로도 행복해지고 또 사회적으로도 유용한 존재(사회적 자기실현)가 될 수 있도록 돕고 지도하는 과정
”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시 유대교가 상충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부버는 유럽의 지성들의 사상에 몰두하게 되고 1904년에 시오니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복귀하려는 민족주의 운동으로, 영토확보 만을 추구하는 정치적 국가주의와는 달리 부버는 문화부흥에 토대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의 정치적 성향을 환멸을 느끼고 결별하게 된다. 하지만 부버는 엘리에저 랍비 이스라엘 벤 엘리에저 의 <유언>으로 하시디즘은 엘리에저의 의해 폴란드에서 생겨났다.
의 책을 읽고 하시딕 영혼을 체험하여 다시 하시디즘과 하시딕 문헌에 대해 5년간 집중적으로 연구하게 된다. 그 결과 부버는 하시드의 삶과 사상에 대해 평생과업으로 몰두하게끔 하였고 세계에서 사라진 하시디즘을 재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초기연구에서 부버는 하시딕 가르침의 신비적 측면(황홀경의 순간을 강조)을 중시했으나 이는 후에 실존주의로 발전하였으며, 최종적으로는 대화철학으로 귀결된다. 즉 부버가 하시디즘에서 발견한 것은 신비적 통일이 아니라 일상적 삶의 모든 것 들에 대한 환희와 경이였다.

참고 자료

마르틴 부버의 「만남」의 교육.
만남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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