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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의 역사

저작시기 2008.02 |등록일 2008.02.26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화장품의 역사에 대하여 여러 사료적 자료들을 근거로 작성한 리포트 입니다. 각각의 유적과 유물들에 대하여 사진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목차

1. 화장의 기원
2. 한국의 시대별 화장과 화장품의 역사
3. 외국과 한국의 시대별 비교

본문내용

c. 고려시대
삼국시대에는 화장품 제조기술이 뛰어나 일본과 중국에 그 기술을 전하였고, 화장기술 역시 고도의 수준에 도달했었다. 화장뿐 아니라 옷 ·장신구 등 모든 생활이 사치에 흘러, 고려시대의 정치가들 사이에서는 신라의 패망이 사치풍조에서 비롯되었다 하여 사치금압 을 강력히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고려가 신라의 정치 ·경제 ·군사제도를 거의 그대로 답습한데다가 문화와 생활관습마저 계승하였으므로 신라의 화장경향 역시 계승 · 진보하였다. 고려인의 화장을 중국측의 기록으로 추측해 보면, ‘부인은 귀밑머리를 오른쪽 어깨에 내려 드리우고 나머지 머리는 아래로 내려 댕기로 매고 비녀를 꽂았다’고 하였으 며, ‘짙은 화장을 즐기지 않아 분은 사용하나 연지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버드나무 잎같이 가늘고 아름다운 눈썹을 그렸다. 또한 비단향료주머니를 차고 다닌다’) 고 했는데, 이들 기록만으로 고찰한다면 고려인의 화장이 담장(엷게 화장)에 그쳤던 것으로 믿어진다.
그러나 이와 같은 표현은 이 기록자들이 송나라 사람들이기 때문에 매우 짙은 화장을 했 던 송나라 여인들보다 엷다고 표현한 것뿐이다. 고려인들의 화장이 결코 엷었거나 연지를 사용하지 않았을 리 없는 것은 불가에서 짙은 화장을 금했던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또, 고려시대 초에 제도화된 기생 중심으로 짙은 화장, 즉 분대화장이 성행하였다. 분대화 장은 반지르한 머리, 눈썹과 연지화장 외에 백분을 많이 펴 바른 것으로서 당시로서는 매 우 짙은 화장이었는데, 기생을 분대라고 부를 만큼 기생의 상징적인 치장이었다.
분대화장 역시 평면화장에 지나지 않았지만, 기생들의 직업적인 의식화장이 조선시대에까 지 계승되고 여염집 여성들은 엷은 화장을 고수하여 고려시대부터 화장경향이 2원화되고, 기생들의 분대화장으로 인하여 화장을 경멸하는 풍조가 생겨나기도 했다.

참고 자료

1) 화장의 역사 , 하루야마 유키오, 사람과 책, 2004
2) 화장과 화장품 , 김덕록, 답게 ,2001
3) 한국현대 여성의 일상문화, 이화형, 국학자료원, 2005
4) 치장의 역사 , 베아트리스 퐁타넬, 김영사, 2004
5) 화장술의 역사, 도미니크 파케, 시공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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