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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와 문화] 풍수지리

저작시기 2004.06 |등록일 2008.02.26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대원사에서 발행한 "풍수지리"라는 책을 기초로 풍수에 관하여 정리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풍수(風水)란?
Ⅲ. 풍수설의 흐름
Ⅳ. 집터와 마을터 풍수
Ⅴ. 형국의 뜻과 사람의 생각
Ⅵ. 맺음말

본문내용

한국 문헌에서 풍수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의 탈해왕에 관한 대목에 왕이 등극하기 전 호공으로 있을 때, 산에 올라 현월형의 택지를 발견하고 속임수를 써서 그 택지를 빼앗아 후에 왕이 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또 백제가 반월형의 부여를 도성으로 삼은 것도, 고구려가 평양을 도읍으로 삼은 것도 모두 풍수사상에 의한 것이다.
삼국시대에 도입된 풍수사상은 신라 말기부터 활발하여져 고려시대에 전성을 이루어 조정과 민간에 널리 보급되었다. 특히 신라 말기에는 도선과 같은 풍수대가가 나왔으며, 그는 중국에서 발달한 참위설을 골자로 하여 지리쇠왕설․산천순역설 및 비보설 등을 주장하였다. 그는, 지리는 곳에 따라 쇠왕과 순역이 있으므로 왕지와 순지를 택하여 거주할 것과 쇠지와 역지는 이것을 비보할 것이라고 말한 일종의 비기도참서를 남겼다.
그 후 고려 때에 성행한 《도선비기》 등은 그 전체를 도선이 지은 것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그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같이 비기라 일컬어지는 예언서가 그의 사후 세상에 유전되어 민심을 현혹시킨 일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그 사례가 많다. 고려 태조도 도선의 설을 믿은 것이 분명하여, 그가 자손을 경계한 《훈요십조》 중에서, 절을 세울 때는 반드시 산수의 순역을 점쳐서 지덕을 속박하지 말도록 유훈하였다.
개경도 풍수상의 명당이라 하여 《삼국사기》 <궁예전>, 《고려사》 <태조세가>, 최자의 《삼도부》, 이중환의 《팔역지》, 송나라 서긍의 《고려도경》, 명나라 동월의 《조선부》 등에도 개경의 풍수를 찬양하였다. 즉 개경은 장풍득수의 형국으로 내기불설의 명당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첩첩으로 산이 둘러싸여 있어 국면이 넓지 못하고 또 물이 전부 중앙으로 모여들어 수덕이 순조롭지 못하다는 것이며, 이것을 비보하기 위하여 많은 사탑을 세운 것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을 정한 것도 그 태반의 이유가 풍수지리설에 의한 것이다. 즉 개경은 이미 지기가 다해 왕업이 길지 못할 것이라는 풍수가들의 의견에 따라 구세력의 본거지인 개경을 버리고 신왕조의 면목을 일신하기 위해 천도를 단행하였다. 그밖에도 《정감록》을 믿고 계룡산이 서울이 된다는 등 실로 풍수지리설이 국가와 민간에게 끼친 영향은 크다. 오늘날에도 민간에서는 풍수설을 좇아 좌청룡 우백호 운운하며 묘를 잘 써야 자손이 복을 받는다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다.

참고 자료

대원사 빛깔있는 책들 "풍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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