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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일제시대의 친일파 성립fp

저작시기 2008.02 |등록일 2008.02.25 한글파일한글 (hwp) | 44페이지 | 가격 4,300원

소개글

위자료 요약정리 잘되어 있으니
학업에 나날이 발전 있으시고
잘 참고하시어 좋은 결과 있기를 기원합니다.

목차

1. 서론
2. 친일파란?
1) ‘친일’과 ‘친일파’의 역사적 개념
2) ‘친일’, ‘친미’를 바로 ‘반민족’이나 ‘매국’으로 판단하기 곤란하다. 3) 김옥균 등은 ‘친일’개화파이다.
4) 외세의존적 성향의 세력들이 근대적 변혁을 이룰 수 있었던가?

3. 친일파 등장 당시의 시대적 상황
1) 당시의 우리 백성들의 삶
2) 친일파의 종류
(1) 적극적인 친일파
(2) 소극적인 친일파.
3) 진정한 독립군은 누구인가.
4) 과연 독립유공자들에게 관심은 있었는가.

4. 근대화의 모델문제와 ‘친일’개화파
5. 식민지 지배에 의존한 자본(富)축적의 기대
1) 유산층에 대한 세제특혜정책
2) ‘만주붐’의 조성과 공업발전의 기대

6. 지방의회 진출을 통한 「동화」 속의 정치적 모색
7. 일제의 동화주의적 식민정책과 친일파의 육성
1) 일제의 동화주의적 식민정책론
2) 친일파의 육성

8. ‘삼국공영론(三國共榮論)’의 논리적 전환
9. 일본의 문화정책과 유학생파견

10. 친일파의 친일논리와 친일활동
1) 일본 보호국하의 문명개화론
2) 합방 전후의 독립불능론과 합방론
3) 3‧1운동 전후의 독립불능론과 실력양성론
11. 지금 시점에서 친일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12. 나의 의견

13. 결 론

본문내용

1. 서론

1990년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던 매국노 이완용의 증손자 윤형씨가 이완용이 친일매국의 대가로 받은 은사금으로 구입해 소유했던 땅 찾기에 나섰다. 윤형씨는 1990년 7월 서울지법 서부지원에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소송을 내, 지난 1992년 11월 1심에서 승소해 소유권을 되찾았으며, 1997년 7월 서울고법 항소심에서도 이겨 최종 소유권을 확정지었다. 문제의 땅은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의 대지 712평으로 시가로는 30억원대에 달했다. 윤형씨는 1991년 귀국한 뒤 증조부 땅 찾기에 나서 전국에 걸쳐 17건의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소송을 냈으며 이 가운데 4건을 승소했다. 그러나 윤형씨는 「이완용 땅 찾기」가 알려져 사회의 지탄을 받게 되자 캐나다로 다시 돌아가 현재도 그곳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편, 2001년 1월 17일 서울 지방법원 재판부는 일제 식민지시대 친일행위를 벌인 `이재극`이라는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보호해 달라는 친일파 후손의 소송에 대해, `민족의 자주독립을 부정하고 일제에 협력한 반민족 행위자나 상속인이 3․1운동 정신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의 헌법기관인 법원에 반민족 행위로 취득한 재산보호를 요구하는 것은 정의에 어긋나는 부적 법한 행위`라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재극은 조선 말기 왕실 종친으로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협조했으며 한일합병 이후 일왕으로부터 남작 작위까지 받은 인물이다. 이것은 반민족행위자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에 대한 시각의 변화라고 보여진다. 이 두건의 판결변화는 최근에도 친일파 청산에 기준이 변화하는데 따른 것이라 본다. 이 장에서는 친일파의 개념과 일제의 친일파 육성정책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2. 친일파란?한국사회에서 친일파란 단지 일본에 우호적이고, 일본문화를 찬양하는 자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주로 ‘파행적인 한국근현대사에서 그 파행을 갖게 한 민족내적 추동인자’(서중석, 1992, <친일파의 존재양태와 구조적 성격>)라는 학술적인 규정이나 ‘당대의 최고 엘리트나 경제인이 사리사욕을 위해 양심과 지조를 버리고 민족을 배반한 자’라는 대중적인 규정을 받고 있다. 그러나 사실 친일파란 단어처럼 정의하기 어려운 말도 없을 것이다. 매국노라는 의미를 띨 때는 개인의 윤리성이 앞서고, 부일협력자라는 의미를 띨 때는 식민체제라는 구조적인 성격이 강조된다. 친일의 문제가 대중의 이야기로 되면서 구조적인 문제보다는 윤리성의 문제가 더 부각된 것이 일반의 현상이다. 해방 정국에서 ‘친일파’ ‘친일분자’ ‘매국노’ ‘부일협력자’ ‘민족반역자’라는 말은 거의 매일 언론지면을 장식하거나 각 사회단체의 강령과 성명서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참고 자료

- 정 태 헌-1930年代 조선인 유산층의 친일론리와 배경
-강정구, 1993. “친일파 청산의 좌절, 그 원인과 민족사적 교훈” 한국사회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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