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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선감의록』 재조명 -『사씨남정기』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저작시기 2008.02 |등록일 2008.02.25 한글파일한글 (hwp) | 14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창선감의록』 재조명 -『사씨남정기』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목차

1. 서론

2. 『창선감의록』과 『사씨남정기』작품설명
① 줄거리
② 작품분석

3. 당대에『창선감의록』이 조명받지 못한 이유
① 김만중과 조성기의 사회적 지위
② 『사씨남정기』와 『창선감의록』의 유사점
③ 정전의 선택

4. 『창선감의록』의 현대적 평가와 의의
① 구조적 측면에서 『창선감의록』의 특징
② 여성의식의 발현

5.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1637~1692)의 『사씨남정기』는 소설의 창작과 구독이 활발하여 소설의 시대라고도 불렸던 17세기 소설 중에서도 정전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에 비해 구성이나 내용 등의 측면에서 여러 유사점을 가지고 있는 동시대의 소설 『창선감의록』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으며, 그 작자로 여겨지는 졸수재 조성기(趙聖期:1638~1689) 역시 우리에게는 낯선 인물이다. 『창선감의록』의 작자에 대해서는 과거 논란의 소지가 있었으나 조재삼의 『송남잡지』등의 근거들을 통해 그 작자를 조성기로 보는 것이 정설화되었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가정소설의 시초가 김만중의 『사씨남정기』이며 『사씨남정기』계 소설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가정, 가문 소설의 포맷으로 여겼으며, 『창선감의록』은 『사씨남정기』의 계보를 잇는 소설 혹은 아류작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들은 이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기에 충분하다.
『사씨남정기』는 『남정기(南征記)』라고도 한다. 확실한 창작 연대는 미상이나, 숙종이 계비 인현왕후(仁顯王后)를 폐위시키고 희빈장씨를 왕비로 맞아들이는데 반대하던 김만중이 마침내 남해도(南海島)로 유배되어, 흐려진 임금의 마음을 참회시키고자 이 작품을 썼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므로 1689년(숙종 15년)에서 그가 세상을 뜬 1692년(숙종 18년) 사이에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시기는 이미 조성기(1638~1689)가 죽은 이후이다. 이에 따르면 『창선감의록』이 『사씨남정기』보다 이전 작품일 가능성이 많고, 결국 가정에서 일어나는 처첩간의 갈등묘사는 『창선감의록』이 먼저 시작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연암 박지원은 허생전에서 허생의 입을 빌어 “예로부터 훌륭한 능력을 지니고도 묻혀 살았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조성기는 적국에 사신으로 보낼만했지만 포의로 늙어 죽었고, 유형원은 전선에 군량미를 댈만한 능력이 있었는데도 바닷가에서 쓸쓸히 삶을 보냈으니, 지금 국정을 도모하는 자들을 알 만하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조성기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렸다. 적국에 사신으로 보낼 수 있다는 말은 졸수재가 그만큼 풍부한 식견과 탁월한 경륜, 그리고 뛰어난 언변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조성기는 이렇듯 17세기 후반부를 대표하는 지식인이었음에도 아직까지도 그에 대한 연구는 일천한 형편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들이 같은 시대를 살아간, 문벌로 보면 같은 서인(西人) 출신인 당대 최고 수준의 지식인들이지만 그들의 삶의 모습이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김만중이 당쟁의 피바람이 부는 거리의 정치가였다면 조성기는 골방의 병든 서생이었다. 즉, 김만중은 당대에도 유명인사였지만 조성기는 그저 몇 사람만 알아주는 사색가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에 주목하고 『창선감의록』이 당대에 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으며, 오늘날 『창선감의록』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고찰해 보기로 하겠다. 그리고 그에 앞서 『창선감의록』과 『사씨남정기』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한 작품설명을 선행하겠다.
2. 작품설명
2.1.『창선감의록』
① 줄거리
젊은나이에 여러차례 나라에 공을 세우고 벼슬이 병부상서 도찰원 도어사에 이른 화욱에게는 세 아내가 있었다. 첫째부인 심씨와 그의 아들 춘은 마음씨가 고약하였고, 둘째부인 요씨는 딸 하나를 낳고 세상을 떠났으며, 마음이 어질고 참한 셋째부인 정씨는 요씨의 딸 화소저를 아들 진과 한가지로 각별히 돌봐주었다. 그리고 이 집에는 젊어서 남편을 여의고 동생 화욱을 찾아온 성부인이 아들 준과 함께 살고 있었다.

참고 자료

임형택, “17세기 규방소설의 성립과 창선감의록”
박일용, “창선감의록의 구성과 미학적 특징”
이승수, “졸수재 조성기설 서설”, 한국사상문화학회,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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