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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활자와 직지에 대하여

저작시기 2008.02 |등록일 2008.02.25 한글파일한글 (hwp) | 17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금속활자와 직지에 대하여에 대하여 여러 사료적 자료들을 근거로 작성한 리포트 입니다. 각각의 유적과 유물들에 대하여 사진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목차

*금속활자 출현시기

*금속활자 발달의 조건과 배경
-기술적 측면
-사회문화적 측면

*금속활자의 특징
-목활자와 금속활자의 비교

*고려 금속활자로 인쇄한 책

*직지에 대하여
-직지의 내용과 저자
-직지의 제작과정
-직지가 현재 프랑스에 있는 이유
-직지를 위한 노력

*세계인쇄문화사적인 시각에서 금속활자 인쇄의 비교
-구텐베르크 42행성서

*금속활자의 의의와 생각해 볼 문제

본문내용

*금속활자 출현 시기

여러 학자의 의견으로, 고려 금속활자의 기원은 고려 숙종 7(1102)년 설이 있다. 고려의 중앙 관서로서 주자를 관장하였던 기관은 서적점이었다. 이 서적점은 문종 때에 설치하였던 관아였다. 충선왕 때에는 한림원과 합친 일도 있었다. 공양왕 3(1391)년에는 없앴다가, 그 이듬해인 공양왕 4(1392)년에 서적원으로 이름을 바꾸어 다시 설치하였다. 이에 대하여는 <고려사> ‘지’ <백관>의 “서적점”조에 기록이 남아 있어, 그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 그런데 <고려사절요>에서는 다만 공양왕 4년 임신 정월초의 기사로 “처음 서적원을 두고 주자를 관장하고 서적을 찍었다”라고 기록하였다. 공양왕 4(1392)년에 비로소 주자를 중앙에서 관장하였다면, 다음에 드는 활자 인본을 찍은 해가 모두 이 때보다 이른 시기에 찍은 책들이 많아, 그 말이 맞지 않는다. 모든 문화가 반드시 중앙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지방에서까지 활자 인쇄가 활발하게 되었다면, 중앙에서도 당연히 활자로 책을 인쇄할 수 있었다고 보는 쪽이 맞는 말이다.
문화적 분위기로 보아도 13세기보다 더 소급될 가능성이 크다. 고려의 문물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12세기경이 객관적으로 보면 금속활자 출현 가능성이 높은 시기이다.
물론 당시의 인쇄기술 수준으로 보아 금속활자인쇄는 장점이 있는 동시에 대량생산이 어려운 단점이 있다. 지속적으로 수요가 많은 책은 비용과 노력이 더 들더라도 목판인쇄가 더욱 효과적이다. 그래서 금속활자가 발명된 이후에도 목판인쇄는 여전히 성행하게 된 것이다.
고려는 활자의 필요성을 처음에는 목활자로서 해결하려고 하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고려는 목활자보다 더 견고한 금속활자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의 축적이 있어서 빠른 시일 안에 목활자에서 금속활자로 전환하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고려 최초의 금속 활자본은 최우가 임시수도인 강화도에서 1234-1241년(고종 21-고종 28) 기간에 28부를 간행한 <<고금상정예문>> (50권)이고,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금속 활자본은 1377년(우왕 3) 청주목의 흥덕사에서 간행한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1책)이다. 물론 이밖에 1239년(고종 26)에 최우가 강화도에서 찍어낸 <<남명천화상송증도가>>(1책)도 금속 활자본으로 알려지고 있다.

참고 자료

손보기, 금속활자와 인쇄술,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0
천혜봉, 고인쇄, 대원사, 1989
http://www.jikjiworld.net/index.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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