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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법의학

저작시기 2008.02 |등록일 2008.02.24 한글파일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700원

소개글

조선시대의 법의학에 대하여 여러 사료적 자료들을 근거로 작성한 리포트 입니다. 각각의 유적과 유물들에 대하여 사진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목차

서론

조선시대의 수사방법
조선시대의 법의학 지침서
조선시대의 검시방법

결론

본문내용

서론
법의학이란 법률상 문제되는 의학적․과학적 사항을 연구하여 이를 해결함으로써 법운영에 도움을 주고 인권옹호에 이바지하는 학문이다. 치료의학과는 달리 법의학은 사람의 권리가 억울하게 침해받는 일이 없도록 그 권리를 옹호하는 권리존중의 의학이라 할 수 있다. 법의학은 그 나라의 정치형태․법률구조 및 국민의식의 수준에 따라 그 발달의 정도가 현저하게 다르며, 생명 못지않게 권리를 소중히 여기는 민주 문화국가에서 발달하였다.

법의학은 주로 형사상 사건에 관련하여 많이 이용된다. 즉 변사자가 발생하면 그에 대한 검안․부검 및 법의학적 증거물을 검사하여 살인이나 상해사건에 대해 강력한 증거를 제시해 범인의 색출, 죄의 유무 판정, 형량의 결정 등에 응용된다. 그 중 법의학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시체를 검사하는 검시이며, 검시할 때에는 사체의 신원을 확인하고, 사망의 종류를 판별하며, 사인을 규명하고, 사망시간을 측정하며, 경우에는 시체 또는 현장에서 증거물을 채취하여 범인 색출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조선시대의 수사방법
조선시대에는 사건을 수사하는 기관이 따로 존재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조사부터 판결 그리고 형벌의 부과를 모두 고을의 수령이 맡았다. 조선시대의 검시제도는 기본적으로 복검제(覆檢制)가 원칙이었다. 복검제란 간단히 말해 검시를 두 번 시행하는 제도이다. 즉 살인사건이나 살인이 의심되는 사건이 발생하면 일단 해당 고을의 수령이 주검을 검사하는 초검(初檢)을 하고, 그 결과와 무관하게 이웃한 고을의 수령이 다시 한 번 검시하는 복검(覆檢)이 뒤따르게 된다. 이 때 초검을 담당한 자는 복검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여, 검시의 객관성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그 후 두 결과가 일치하면 이를 받아들이지만, 서로 다르면 형조(刑曹)등의 상급 관청에서 세 번째로 검시한다.

초검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①변사자의 신고
②당해 고을의 수령이 검험관(檢驗官)으로서 서리 등을 데리고 출동
③현장과 주검을 검사
④관련인들을 조사
⑤시장(屍帳:검시 결과를 기록한 장부)을 작성해 상급 관청에 보고
복검과 삼검도 모두 같은 절차로 시행되었다.

참고 자료

원통함을 없게 하라(조선의 법의학과 <무원록>의 세계), 2006, 김호, 웅진
조선시대, 과학수사와 인권중시는 기본, 2005, 이종호, 국정브리핑 http://www.news.go.kr/
신주무원록을 통해 본 조선시대 법의학, 2003, 이윤성, 과학동아
두산세계대백과 엔싸이버 http://www.encyb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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