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소빙기의 자연재해와 그 사회경제적 영향

저작시기 2007.11 |등록일 2008.02.16 한글파일한글 (hwp) | 21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사학과 학사 졸업논문으로 제출한 것입니다. 물론 논문 합격했구요. 조선시대 소빙기의 결과와 극복노력(정책)에 대해 썼습니다. 대부분의 용어에 한자표기를 함께 했고, 조선왕조실록의 자료를 많이 활용하였습니다.

목차

Ⅰ.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Ⅱ. 소빙기의 자연 재해
Ⅲ. 자연재해와 그 영향
Ⅳ. 자연재해와 농민
1. 기민진휼정책(饑民賑恤政策)
2. 현종대(顯宗代)의 진휼책(賑恤策)
3. 부세제도 개선
1) 대동법(大同法)의 시행
2) 균역법(均役法)의 시행
Ⅴ. 자연재해와 국가
1. 황무지 개간
2. 농업기술상의 대책
Ⅵ. 맺음말
Ⅶ. 참고문헌

본문내용

농업이 산업의 중심이었던 조선 시대에 여러 자연현상 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강우량(降雨量)과 기온(氣溫)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비가 여름에 집중하여 오고 한 번 오면 큰 호우가 쏟아지며, 내리는 시기와 변동율이 일정하지 않은 특징이 있다. 이러한 강수의 특색은 전근대 사회에 홍수로 인한 수재(水災)와 가뭄으로 인한 한재(旱災)를 끼쳤으며, 홍수뿐만 아니라 강한 바람을 동반한 비로 풍수해(風水害)까지 발생시켰다.
봄철 황사(黃砂)를 섞어 내리는 우토(雨土)는 조선 시대 전체를 통해서 15세기가 가장 높았다. 19세기는 홍수가 가장 심하게 나타났으며, 강한 비바람을 동반한 풍우는 17세기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내리는 폭우는 18세기가 가장 많으나, 19세기에도 빈번히 나타났다.
가뭄은 장기간에 걸쳐 광범위한 지역에 일어나며, 사회, 경제 및 환경을 파괴하는 자연재해라 할 수 있다. 가뭄이 지속되는 시간적 규모는 짧게는 한 계절에서 1년, 길게는 10년 정도 되기도 한다. 장기간 계속되는 물 부족으로 인한 누적된 효과는 농업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는 홍수가 빈번할 뿐 아니라 비가 농사 적기에 오지 않거나 연 강수량의 변동이 심해 자주 가뭄이 발생하는 특징이 있다. 가뭄은 최악의 재앙이라 불렸는데 이는 수리 시설이 충분히 발달되지 못했던 고대일수록 더욱 심각했을 것이다. 흉년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문제점은 단순히 식량 수급 상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국민경제 전체가 큰 타격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17세기는 가뭄이 들지 않은 해가 1613년, 1621년, 1696년, 1698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한재(旱災)를 겪었다. 특히 17세기 중반 무렵에는 이상저온(異常低溫) 현상이 장기간 지속된 시기였다. 또한 16세기도 비교적 한재(旱災)가 심했다.

참고 자료

강제훈, 「조선시대 財務制度 연구」, 한국행정학회, 한국행정학회 학술대회 발표논문집, 2005
김연옥, 「한국의 소빙기 기후」, 서울대학교 지리교육과, 1984
김연희, 「조선시대의 기후와 농업변동에 관한 연구」, 경북대 대학원, 1997
양진석, 「顯宗代 賑恤策의 시행과 賑恤穀 확보」, 『朝鮮의 政治와 社會』, 집문당, 2002
오종록, 「15세기 자연재해의 특성과 대책」, 『역사와 현실』, 역사비평사, 1991
李泰鎭, 「小氷期(1500-1750) 천변재이 연구와 《朝鮮王朝實錄》- global history의 한 章」, 《歷史學報》 제 149호, 1996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