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조선 정국의 운영과 갈등 - 도학과 사화를 중심으로

저작시기 2008.02 |등록일 2008.02.15 한글파일한글 (hwp) | 11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조선 정국의 운영과 갈등 - 도학과 사화를 중심으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고 좋은 결과있으시길 바랍니다.

목차

1. 序言

2. 사화(士禍)
1) 무오사화(戊午士禍)
2) 갑자사화(甲子士禍)
3) 중종반정(中宗反正)과 기묘사화(己卯士禍)
4) 을사사화(乙巳士禍)

3. 도학(道學)과 성군론(聖君論)
1) 성군론(聖君論) - 도학정치의 이상적 군주상
2) 언로와 인재등용의 강조와 한계

4. 結語

본문내용

1. 序言
15세기 후반 조선에서는 정치․사회․경제적으로 큰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조선 건국을 주도하여 정권을 독점해 왔던 훈구세력이 양반관료제의 모순을 야기하고 있었고, 이에 수반하여 과전법의 붕괴와 지주제의 발달, 상품의 유통과 공납제의 모순 심화, 군역제도의 붕괴, 국제교역의 발달 및 마찰 등 새로운 사회경제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훈구세력은 고리대적 사채를 이용하고, 역의 부담에서 벗어나려는 양민의 투탁(投託), 반인(伴人)과 병사(兵史)의 과다한 점유, 양민을 강제로 천인으로 삼고 자기 소유가 아닌 공사노비를 사역하는 등의 방식으로 경제력의 확대를 꾀하였다.
정치적 측면에서 훈구세력은 정치권력을 독점․남용함으로써 점차 권귀화(權貴化)의 길을 걸었다. 군신 권력관계의 측면에서도 연산군대는 성종대의 변동양상과 함께 16세기 이후 군권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촉발한 계기가 되는 시대였다. 흔히 폭정으로 지칭되는 연산군대는 조선 초기 지향해 온 유교정치와 여기에 기반을 둔 통치체계, 그리고 군신 권력관계 등이 파탄에 직면했던 시기였고, 연산군대의 폐정을 바로잡기 위해 일어난 중종반정 이후는 사림의 도학정치이념에 따라 군주를 바로 세우고 군․신 권력 간의 균형을 찾아가는 시기였다.
성종 중반 이후 삼사체계를 갖추면서 언론을 주도하였던 사림은 이러한 훈구파의 권력 오용과 사회 불안정을 극복하기 위해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활동하였고, 점차 성장을 거듭하여 훈구파를 대신할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아갔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권력층을 형성하고 있던 훈구세력과 대립하였고, 이는 ‘사화(士禍)’라는 사림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의 형태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러한 거듭된 탄압에도 불구하고 사림계가 궁극적으로는 정치적 우세를 점하게 됨으로써 공도와 공론을 주창하는 새로운 사림정치시대를 열어가게 되었다.
이에 본 글에서는 이러한 사림의 중앙 진출에 수반하는 정치적 갈등으로 나타난 사화와 사림이 새로운 정치 질서를 세우기 위한 이념으로 내세운 도학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참고 자료

․『中宗實錄』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28권, 국사편찬위원회, 2003.
․ 김돈, 『조선전기 군신권력관계 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7.
․ ____, 『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솔, 2005.
․ 이상성, 『정암 조광조의 도학사상』, 심산, 2003.
․ 이원균, 「李晦齋와 그 政治思想」, 『한국사상논문선집』63권, 불함문화사, 1999.
․ 이태진 , 「조선시대의 정치적 갈등과 그 해결」, 이태진 편저 : 『조선시대 정치사의 재조명』, 태학사, 2003.
․ 최연식, 이지경, 「사림의 지치주의 정치사상」, 한국․도양정치사상학회 엮음 : 『한국정치사상사』, 백산서당, 2005.
․ 최이돈, 『조선중기 사림정치구조연구』, 일조각, 1994.
․ 한영우, 『다시찾는 우리역사』, 경세원, 2004.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