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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간통죄

저작시기 2008.02 |등록일 2008.02.15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800원

소개글

조선의 간통죄에 대한 내용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기 바랍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조선의 간통죄
Q:조선시대에도 간통이있었을까?
A:물론이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남녀가 밥상에 마주 앉는 일 마저도 간통으로 생각할 정도였기 때문에 간통에 걸려드는 경우가 지금보다 더 많았다. 간통이라고 하면 흔히들 결혼한 기혼 남녀가 배우자 이외의 다른 사람과 자기의 의사에 따라 불법적인 성관계를 가지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조선의 간통 개념은 지금과는 달랐다. 남녀 모두 기혼 유무를 막론하고 혼외 성관계를 가지는 것을 모두 간통으로 취급했다.
조선시대 간통죄중 한가지 특이한 점은 서로 다른 신분간의 간통을 엄격히 규제했다는 점이다. 신분상의 질서가 어지럽혀지는 것을 전혀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엄격한 성윤리를 강조하다보니, 간통에 대한 처벌도 무거워졌다. 그렇다고 해서 사형까지 처해지는 일은 드물었다. 그런데 결코 사형을 면할수 없었던 간통도 있었다. 바로 근친간의 간통이었다. 인류 역사상 문명화된 사회일수록 근친간의 간통은 가장 금기시되는 문제로 등장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근친에 해당하는 친족의 범위 또한 어느시대, 어느나라보다 광범위해서 근친상간에 걸릴 가능성이 높았다. 조선시대 근친간의 간통사례 중 특이한 것은 장모와 사위간의 간통이 상당히 많았다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인 결혼풍속 탓이 크다. 사실 시집살이를 하는 결혼은 중국식 결혼풍속으로, 이것이 전해져 장착된지는 200년도 채 않됬다. 대신 남자들이 처가에 들어가 사는 것이 전통적인 결혼풍속이었다. 그러다보니 사위와 장모가느이 간통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다. 마찬가지로 형부와 처제, 제부와 처형사이, 그리고 이종사촌간의 간통도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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