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세종대왕시대 군사제도의 정비와 외교에 관한 고찰

저작시기 2008.02 |등록일 2008.02.14 한글파일한글 (hwp) | 14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많은 도움되시고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목차

머리말

1. 군사제도의 정비와 국방
1) 중앙 군제의 정비
2) 지방군제의 정비와 국방
3) 화기(火器)의 발달과 국방

2. 대외관계
1) 대명관계
2) 대여진관계와 북방개척
3) 대마도정벌과 대일본관계

맺음말

본문내용

세종대는 우리민족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유교정치, 찬란한 문화가 이룩된 시대였다. 이 시기에는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반적인 기틀을 잡은 시기였다. 즉, 집현전을 통하여 많은 인재가 배양되었고, 유교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와 제도가 정비되었으며, 다양하고 방대한 편찬사업이 이루어졌다. 또, 훈민정음의 창제, 농업과 과학기술의 발전, 의약기술과 음악 및 법제의 정리, 공법(貢法)의 제정, 국토의 확장 등 수많은 사업을 통하여 민족국가의 기틀을 확고히 하였다.
세종 4년까지는 태종이 상왕으로 생존하여 있었으므로 태종의 영향이 계속된 시기였다. 1414년(태종 14)에 이룩된 육조직계제(六曹直啓制)는 의정부 대신의 정치적 권한을 크게 제약하고 왕권의 강화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종은 이러한 정치체제를 이어받아 태종대에 이룩한 왕권을 계속 유지하면서 소신있는 정치를 추진할 수 있었다. 세종대는 개국공신 세력은 이미 사라지고 과거를 통하여 정계에 진출한 유자적(儒者的) 관료와 유자적 소양을 지닌 국왕이 서로 만나 유교정치를 펼 수 있었던 시기였다.
세종대의 권력구조나 정치적인 분위기는 세종 18년을 전후로 하여 두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즉, 세종 18년에는 육조직계제가 의정부서사제(議政府署事制)로 개혁된 정치체제의 변혁이 있었고, 이듬해는 세자(世子:뒤의 문종)로 하여금 서무(庶務)를 재결(裁決)하도록 하였다.
이로 인해 정치적 분위기는 더욱 안정되고 유연하게 되어갔다. 따라서, 언관(言官)과 언론에 대한 왕의 태도도 비교적 강경한 자세를 보였던 그 이전에 비하여 훨씬 자유롭고 부드러워져서 이들에 대한 탄압이나 징계는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이와같이 정치적 분위기가 변한 원인은 유교정치의 진전에서 찾을 수도 있다. 즉, 세종 전반기에 집현전을 통하여 많은 학자가 양성되었고, 그 학자들이 동원되어 유교적 의례․제도의 정리와 수많은 편찬사업이 이룩되어 유교정치 기반이 진전되었고 세종 18년에 육조직계제에서 의정부서사제로의 이행도 유교정치의 진전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같은 정치체제로의 변화는 왕의 건강 문제와도 크게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종은 일찍이 신병 때문에 고통을 받아왔으므로, 정무가 왕에게 폭주하는 육조직계제는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즉, 유교정치를 펼 수 있었던 기틀은 정치적․제도적․문화적 기반의 성립, 왕권의 안정, 그리고 왕의 건강의 악화 등에 있었다. 이러한 요소들이 세종 전반기와 후반기의 정치적 분위기를 변화시킨 요인으로 볼 수 있다.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