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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 강화책을 통해 본 대원군의 정세인식

저작시기 2008.02 |등록일 2008.02.14 한글파일한글 (hwp) | 13페이지 | 가격 900원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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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 론
일본의 경우
대원군의 국방개혁
대원군의 군비강화정책 평가
대원군시대의 再도래
<참고문헌>

본문내용

세상의 중심(中華)이라고 믿었던 거대 제국, 그래서 때가 되면 조공을 받쳐 그들에 의한 화를 면하고자 했던 나라가 야만의 문명이라고 여겼던 나라에게 침략을 당하여 패배하였다. 야만의 군사력은 세계 최고라고 생각했던 ‘세상의 중심’국의 군사력의 우위에 있었다. 그 야만의 문명국이 그 여세를 몰아 언제 우리에게 마수를 뻗칠지 모르는 형국이다. 몇 해 전부터 개항을 요구하는 서양의 이양선들이 적지 않게 출몰하고 있다.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무엇인가?
이 문제에 대한 선택지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군사적인 측면에서만 살펴보고자 한다. 간단히 생각해 보자면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개항 요구에 대한 대응은 결사항전이거나 개항 요구의 수락일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 대응 모두 엄청난 피해가 예상된다. 그러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군사력의 강화가 아닐까 한다.
흥선 대원군도 군사력의 강화를 추진하였다. 집권 초기에는 비록 권력 강화를 위한 군사력의 정비라는 측면이 강했지만 병인양요(丙寅洋擾) 이후에는 대외적인 이유에 의해 군사력의 강화를 꾀하였다. 그러나 군사력 강화를 위한 방향은 결코 현실적이지 못했다. 결국 “조선 근대의 괴걸이요, 유사 이래 어떤 제왕이든 감히 잡아 보지 못하였던 ‘절대적’ 권리를 손에 잡고 이 팔도 삼백여 주를 호령하며, 밖으로는 불란서, 미국, 청국들을 내리 누”를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대원군은 진정 역사가 요구하는 군사적 변혁의 성격에 대한 통찰력 부족으로 인해 자기보존을 도모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을 소비하고 말았다.
이글에서는 먼저 동일한 시기에 비슷한 정세로 외세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던 일본이 미국의 페리 제독의 함대의 내항 이후 군사력을 어떻게 변경시켰는지 살펴본다. 일본은 비록 미국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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