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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로 인해 사라져간 숭례문(남대문)

저작시기 2008.02 |등록일 2008.02.12 한글파일한글 (hwp) | 17페이지 | 가격 2,300원

소개글

화재로 인해 소실된 우리의 국보 숭례문(남대문)에 대하여 기록사진들을 실어 가치와 역사를 분석하고 복원에 대한 희망과 안타까움을 표현했습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숭례문(崇禮門)의 가치와 의의

Ⅲ. 숭례문의 역사
1. 동국여지비고에 실린 기록
2. 임진왜란과 숭례문
3. 병자호란과 숭례문
4. 사진으로 보는 숭례문의 역사

Ⅳ. 2008년 2월 10일 숭례문(남대문) 화재상황

Ⅴ. 숭례문 화재에 대한 외신보도

Ⅵ. 숭례문의 원형 복원

Ⅶ. 결 론 - 화재로 인한 숭례문 소실에 대한 의견

본문내용

Ⅰ. 서 론
아쉽게도 우리의 거물급 문화재 숭례문이 화재로 소실되었다. 1395년 조선 태조 때 창건돼 1398년 새 왕조의 대문으로 완성된 숭례문. 1447년 세종시대에 풍수지리설에 따라 제대를 높여 개축한 이후 1479년 성종 때 대규모 보수공사를 거쳤다. 소실전의 모습은 1963년 중수한 것이다. 그 후로 잦은 개보수를 거쳤지만 기본 구조만은 계속 유지해 왔다.
숭례문은 서울에 현존하고 있는 목조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었다.
중앙부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낸 거대한 석축 기단 위에 앞면 5칸 옆면 2칸 크기로 지은 누각형 2층 건물이다. 지붕도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형태인 우진각 지붕으로 고려 말 조선전기의 건축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을 뿐 아니라 현존하는 한국 성문 건물로서는 가장 규모가 컸었다.
`숭례문`이라는 현판은 `지봉유설`의 기록에 따르면 양녕대군이 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동대문과는 달리 방어의 목적보다는 도성의 주입구로서의 상징성이 강해 조선시대부터 국가의 대문으로 여겨져 왔으며 1962년 국보 1호로 지정된 우리 민족의 상징적인 보물이다.
지난 2006년 3월, 100년 만에 개방돼 일반인의 홍예문 출입이 가능해졌지만 누각으로의 접근은 제한돼 왔었다.
2008년 2월 10일, 숭례문에서 처음 연기가 날 때만해도 많은 사람들이 `저러다 꺼지겠지`하고 소방당국을 믿었다. 하지만 되살아난 불씨는 순식간에 600년 문화재를 폐허로 만들었다.
숭례문에서 처음 화재가 발생한 시각은 어제 저녁 8시 50분쯤이었다.
50~6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숭례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시민들이 목격한 직후 누각에서 연기와 불길이 피어올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진화에 나섰고 화재 발생 한 시간 만인 어제 저녁 10시쯤에는 어느 정도 불길이 잦아들었다. 소방당국은 이때부터 불이 난 2층 누각까지 접근해 진화작업을 벌이는 동시에 발화 지점을 찾기 위한 수색작업에 나서기도 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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