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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종의 제국을 읽고

저작시기 2007.04 |등록일 2008.02.11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에이쁠 받은 레포트 입니다.
광종의 제국이라는 책에 대한 서평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본론
1. 태조에서 혜종으로
2. 혜종에서 정종으로
3. 정종에서 광종으로
4. 광종의 개혁정책
Ⅲ. 맺음말

본문내용

후삼국은 변방의 송악출신 태조왕건에 의해 평정되었다. 스무살에 고려의 궁예 밑에서 기반을 닦은 왕건은 마흔두살에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창업하였으며 935년 후백제왕 견훤의 항복을 받은 후 신라를 흡수하더니, 이듬해 예순의 나이로 후 백제왕의 군대를 격파하여 백제를 멸망시킴으로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하였다. 태조가 통일의 대업을 이룬 근본적 요인은 지방세력인 호족들과 군대를 지휘하는 장군들의 적극적 지원을 이끌어낸데 있다. 하지만 호족세력이 대업을 이룬 이후 왕의 권위와 중앙권력에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하자 호족들과 혼인관계를 통해서 그들을 견제하는 한편,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그는 29명~30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왕건의 혼인관계를 살펴보면 그는 지극히 계산적이다. 충주, 청주, 진주, 천안, 광주, 송악, 합주 등 전국 각 지역의 세력이 막강하거나 공을 세운 호족, 그리고 교통의 요지에 있는 지역의 호족들의 딸과 혼인을 맺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왕건은 정치적의 세력균형을 위해 여러 여성을 눈물로 살게 한 인물이기도 하다. 실질적으로 한번관계를 맺고 다시는 찾지 않아 과부와 같은 생활을 한 여인도 있으니 왕건이 얼마나 냉철한 인물이었는지 느껴진다. 여기서는 전 국민이 시청한 드라마속의 인물이 아닌 실질적 태조를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였다. 태조의 다른 업적은 태조26년 자신의 운명이 다함을 느끼고 훈요십조를 지어 후세에 전했다. 훈요의 중심 내용으로는 불교숭산과 차현이남의 공주강 밖의 땅에서 등용하지 말라하며 왕위계승은 장자, 차자 순으로 하라고 하는 등의 훈계를 하고 이를 지킬 것을 요구한다. 『광종의 제국』에서는 주로 왕위계승 과정을 묘사하고 있는데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이 세 번째, 왕위계승 순서이다. 훈요는 지금도 많이 인용되고 있으며 당시 왕들이 본받을만하다고 한다. 또한, 훈요에서 일컬어지는 차현이남의 경계선의 위치를 가지고 학계에서도 많은 설을 보여주었다.
태조는 943년 67세를 일기로 붕어하였다. 그는 사망하기 전 박술희등에게 정윤 왕무를 보좌할 것을 말하였는데, 이는 왕무를 왕위계승자로 올린 것을 뜻한다. 사실 왕무가 정윤이 되기까지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왕건이 즉위 당시의 많은 호족과의 혼인이 당대에는 유연하게 작용하였을지 몰라도 후대에게는 왕위를 이을 수 있는 왕자가 늘면서 정윤을 위협하는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왕건은 29명의 많은 부인을 두었고 또한 자녀들 역시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중 25명이 왕자였다. 그중 후계자로 낙점된 행운아는 둘째 왕후인 나주 장화왕후 오씨의 아들 왕무였다.

참고 자료

5백년의 리더십 광종의 제국
김창현 푸른역사 2003.01.07 3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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