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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국어의 통사론과 근대국어의 형태론 중 곡용

저작시기 2004.06 |등록일 2008.02.10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중세국어의 통사론과 근대국어의 곡용에 대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第 七章 후기 중세국어(後期 中世國語)
6. 통사(統辭)
1) 종속절의 변형(從屬節의 變形)
(1) 종속절의 주어가 속격형으로 변형
(2) 종속절의 주어가 대격형으로 변형
2) 집단 곡용(集團 曲用)
3) ‘-’(如), ‘-‘(値)
4) 형식명사
5) 동명사의 명사적 용법
6) 문장의 서술어는 체언이나 동명사에 첨사가 연결
7) 한문으로부터의 영향
8) 單文은 거의 없고 複合文과 合成文 이 뒤얽힌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弟 八章 근대국어(近代國語)
2. 곡용(曲用)
1) 중세의 ‘ㅎ’말음 명사들은 근대에 와서도 전기에는 그말음을 유지했으나 후기에는 그것이 탈락되었다
2) 근대에 와서 체언의 비자동적 교체를 지양하고 그 單一化를 성취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3) 근대어의 조사
4) 대명사
3. 활용(活用)
1)어간의 활용
2)교체에 적용되는 규칙의 변화
3) 어미의 활용

본문내용

3) 근대어의 조사
* 근대어의 조사에서 무엇보다도 주목되는 것은 主格의 ‘-기’다.
-이 조사의 첫 露頭는 16세기에 어렴풋이 드러난 일이 있지만, 17세기 문헌들에서 그 존재가 확인된다.
예 : ‘가 올 거시니’ (첩해신어 1.8)
‘東萊가 요이 편티 아니시더니’ 첩해신어 1.26)
☞ `, 東萊` 등이 모두 y를 가진 이중모음들임이 주목된다. 이렇게 ‘-가’가 일정한 환경에만 나타나는 사실은 17세기가 그 발달의 초기임을 말해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口語에서는 ‘-가’의 사용이 자못 광범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18, 19세기에도 文語에는 이것이 잘 사용되지 않았다.
* 근대어에 와서 ‘-의’만이 속격의 기능을 나타내게 되었다.
-중세어에서 속격이었던 ‘-ㅅ’은 근대어에 와서 문자 그대로의 “사이시옷”이 되었다. 거의 합 성 명사 사이에만 나타나게 되어 그 표지가 되었다.
* 공동격 조사는 근대에 와서 모음 뒤에는 ‘-와’, 자음 뒤에는 ‘-과’로 확정되었다.
-16세기에 y 뒤에도 ‘-과’가 나타나, 이것이 17세기에도 계속되었으나 곧 ‘-와’로 통일되었다.
* 존칭의 호격 조사 ‘-하’는 근대어에서는 쓰이지 않게 되었다.
4) 대명사
* 대명사에서는 1인칭과 2인칭의 주격형 ‘내가’, ‘네가’가 근대어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내가’는 18세기 말경에 일본(대마도)에서 편찬한 隣語大方(3.19, 22)에 처음 나타나는 듯하다
* 중세어에 있었던 3인칭의 尊稱 ‘갸`는 宮中語에 ’가‘로 남은 것으로 생각된다.
예 : ‘공쥬 가 므 일고, 그냥 공라 여라’ (계축일기)
* 중세어에 있어서 미지칭 어간은 ‘누’ 단일형이었는데 이 ‘누’와 의문의 첨사 ‘고/구’가 결합한 ‘누고, 누구’가 또 하나의 어간형으로 지반을 닦게 되었다.
예 : 누구 어믜 오라븨게 난 식이며 누구 아븨 누의게 난 식고 (노걸대언해 上 14)
* 17세기에 있어서 사물대명사의 미지칭은 ‘므엇’과 ‘므섯’이 공존하였다.
예 : 므서슬, 므서시 (박통사언해 上 56), 므엇리오 (노걸언해 上 24)
☞실상 이 공존은 16세기 말의 소학언해에서 이미 볼 수 있었던 것이다. 18세기에서는 ‘무엇’으로 단일화되었다.
*‘어느’는 근대어에서 대명사로서의 용법을 잃어버려 곡용을 하지 않게 되었다.

참고 자료

국어학 개설,이익섭 | 학연사 | 200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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