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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랑장택상

저작시기 2007.12 |등록일 2008.02.09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창랑장택상

목차

서론
본론
1. 광복회사건과 장택상 가문
2. 장택상의 일생
3. 이승만 정권의 흐름 속에 장택상
1) 대구폭동 그리고 최능진과의 대립
2) 몽양 여운형 암살사건
3) 제주 4.3 폭동 사건
4) 여. 순 반란 사건
5) 1948년 5·10 선거와 최능진
6) 백범 김구 암살사건
7) 발췌개헌안에 의한 부산정치파동
8) 헌번개정안과 사사오입의 개헌
9) 장택상 후보 등록 방해 사건
▶ 신문 자료
결론

본문내용

서론

국가와 민족이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의 모든 기득권 세력이 그렇듯이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려고 하고 생각하는 그런 풍토 속에서 우리민족의 정치인들은 어떻게 행동하였는가?
우리는 장택상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보여 지는 일제하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향후 대립적인 모습을 생각할 수 있다.
1930년대부터 3공까지 애국우익의 거두요 반공반일의 화신이며 옥스퍼드 유학중에는 유럽지역 독립운동가의 정신적 지주였고 해방후에는 경찰총장 수도경찰서장으로 봉직하며 수도서울의 치안을 담당하며 좌익 빨갱이들 처단에 공을 세운 장택상에 대해 한평생 삶의 흔적을 알아보도록 하자.

본론

1. 광복회사건과 장택상 가문

친일부호 장승원 피살 경술국치 이후 우국청년들의 일부는 공허한 이론공방을 거부하고 곧바로 무력항쟁의 길로 나선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경주사람 박상진을 중심으로 한‘광복회’회원들이 친일부호들을 대상으로 국권회복운동자금을 강제 모금하던 중, 1917년 11월 전 경북관찰사 장승원을 권총으로 살해한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칠곡군 인동의 거부였던 장승원은 1904년 봄, 당시 의정부 삼찬직에 있던 왕년의 의병장 왕산 허위선생에게 매달려 보직에 힘써주면 20만 원의 의병군자금을 내겠다는 맹약을 하고 경북관찰사직에 오른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1908년 왕산이 일군에 잡혀 순국하자, 이 약속을 추궁하는 왕산 문하의 의병들을 오히려 고발하는 무리수를 저질렀다. 이 밖에 1934년 일제의 경북도 경찰부가 펴낸 `고등경찰요사`란 책에 따르면 장승원은 왕실 토지의 편취, 부녀자 구타살해 후 병사했다는 허위검안서 제출 등의 나쁜 소문으로 의병들의 징치대상 제1호였다.

참고 자료

장택상 저 「대한민국의 건국과 나」
정영진의 `대구이야기`(매일신문/2006년 2월 20일)
네이버 , 구글 , 엠파스 자료 검색
연합뉴스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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