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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와 관련된 보고서입니다.

저작시기 2004.10 |등록일 2008.02.09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친일파와 관련된 보고서입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1) 언론 분야
(2) 문학 분야
(3) 학술 분야
(4) 여성계
(5) 음악과 미술계

3.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최근 들어 과거사 청산 문제가 다시금 여론의 뜨거운 도마 위에 올려졌다. 과거사 청산의 문제가 더 이상은 피해갈 수 없는, 그리고 숙명적으로 해결되어야만 하는 문제임을 직시하고 있는 우리는, 이제 과거사 문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친일파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1910년 일제에게 우리의 국권을 강탈당한 후, 우리는 그들의 교묘한 정치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국권 강탈 이후, 일제는 식민 통치의 중추 기관으로 조선 총독부를 설치하여 한민족에 대한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착취를 자행하였다. 자문 기관으로 중추원이라는 기관을 두어 한국인을 정치에 참여시키는 형식을 취한다고는 했으나, 중추원은 3․1운동 때까지 거의 10년간 한 차례의 정식 회의도 소집되지 않았던 것만 보더라도 그것이 이름만의 기관이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중추원은 한국인을 친일파로 회유하기 위한 형식적인 기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의 교묘한 눈속임에 크게 저항하여 우리 한민족은 1919년 3․1운동을 일으켰고, 이 운동을 기점으로 하여 일본은 우리나라에 대한 식민지 지배 정책을 변화시켰다. 이른바 ‘문화 통치’로 일컬어지는 것이 바로 그 형태이다. 이러한 문화 통치를 통해서 일본은 헌병 경찰제를 보통 경찰제로 바꾸었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비롯한 우리 민족의 신문 발행을 허가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문화 통치는 실제로는 소수의 친일 분자를 키워 우리 민족을 이간, 분열시키고, 민족의 근대 의식 성장을 오도하며,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학문과 기술만을 허용하여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도움이 될 인간, 즉 친일파를 양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발생한 친일파는 과거에 이미 그 대가를 받았어야 마땅하나, 식민통치 이래로 우리 민족은 우리의 주권을 되찾고 외세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여러 민족운동으로 잔재되어 있는 친일파의 세력을 정리할 수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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